美 회계감사업무 제한 규정 "이빨 빠진 기업감독 규제안"

  • 입력 2003년 1월 28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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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IBM의 존 애커스 회장이 사임을 발표했다. 이보다 3개월 앞서 제너럴모터스(GM)의 이사회는 로버트 스템펠 회장을 몰아냈으며, 아메리칸엑스프레스, 코닥, 웨스팅하우스, 애플컴퓨터 등 유수 기업의 회장들이 줄줄이 물러났다. 실적 부진으로 주가가 하락하자 주주들이 들고일어난 것.

뉴욕 타임스는 26일 “93년 ‘주주 중심’의 기치를 든 기업지배구조 혁명이 일어난 지 10년 만에 또 다른 혁명이 찾아왔다”며 회계부정 스캔들 이후 일련의 개혁을 ‘혁명’에 비유했다.

10년 전 혁명의 과제는 경영진의 이해를 주주의 이해와 일치시키는 것. 경영진이 주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하는 장치들이 속속 도입됐다. 스톡 옵션이 대표적인 사례. 그러나 이는 경영자들이 회계를 조작해서라도 주가를 ‘뻥튀기’하도록 하는 한 요인이 됐고 이를 감시할 전문인력의 층은 점점 엷어지면서 또 다른 ‘혁명’을 부르고 있는 것.

75∼77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었던 로데릭 힐스 변호사는 “당시에는 와튼 스쿨(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졸업생의 20%는 회계사를 지망했지만 요즘 회계사와 감사들 중에는 MBA 출신을 찾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90년대 계속된 호황으로 기업 윤리는 둔감해졌고 주주들은 눈감았다.

이러한 문제들이 지난해 잇따른 회계부정 스캔들로 백일하에 드러나자 SEC는 26일 지난해 7월 통과된 ‘사반스-옥슬리법’에 기초해 기업 감독안을 승인했다. 이 안에 따르면 회계조작의 수단이 돼왔던 ‘프로 포마(pro forma)’ 회계 관행(특별 손익을 장부에서 임의로 빼는 것)이 제한됐고 이사회 회장이나 최고경영자가 임의로 본인 주식을 팔아치울 수 없게 됐다. 회계법인이 감사 대상 회사에 대해 컨설팅 등 ‘감사 이외의 업무’를 할 수 없게 됐으며 기업들은 이제 회계위원회에 금융 전문가가 없으면 그 이유를 명시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혁명’에는 못 미치는 미온적 조치라는 반응.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새 규제안이 회계사 변호사들의 집요한 로비로 인해 ‘이빨 빠진 규제안’이 됐다는 지적도 많다”고 27일 인터넷판에서 전했다.

과거 감사 외적 업무로 3배나 많은 수익을 올리던 회계법인들은 맹렬한 로비로 ‘감사 업무’로 간주되는 영역을 크게 넓혔고 기업들은 금융전문가의 기준을 대폭 낮췄다. 지난해 회계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신설된 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는 윌리엄 웹스터 위원장이 전력시비로 사임한 이후 후임자도 없는 상태. 기업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변호사들이 해당 기업의 범법행위를 폭로토록 한 의무규정은 변호사들의 집단적인 반발에 부닥쳐 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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