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에이즈의 날]“감염자 인권도 존엄… 더불어 살자”

  • 입력 2002년 12월 1일 18시 15분


지난달 29일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국제적인 에이즈 상징물인 리본으로 둘러싸인 잔디밭에서 남녀가 키스하고 있다. 브라질은 남미국가 중 가장 에이즈 환자가 많은 나라지만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에이즈 치료약 공급정책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브라질리아(브라질)로이터뉴시스
지난달 29일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국제적인 에이즈 상징물인 리본으로 둘러싸인 잔디밭에서 남녀가 키스하고 있다. 브라질은 남미국가 중 가장 에이즈 환자가 많은 나라지만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에이즈 치료약 공급정책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브라질리아(브라질)로이터뉴시스
1일은 제15회 ‘세계 에이즈의 날’. 이날 각국에서는 에이즈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캠페인이 다채롭게 펼쳐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에이즈 예방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판단하고 2002∼2003년도 세계 에이즈 캠페인의 슬로건을 ‘더불어 살기(Live and let live)’로 정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에서 “‘더불어 살기’는 에이즈 감염·비감염자 모두 인권의 존엄성을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에이즈에 대한 침묵과 편견을 버리고 에이즈에 대해 솔직히 얘기를 나눠라”고 촉구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성명을 내고 에이즈 백신 개발 등에 29억달러,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을 중심으로 5억달러의 에이즈예방기금을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에이즈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에이즈 자활단체인 ‘맹그로브 숲’이 공식 인가돼 베이징(北京) 시내 쭤안병원에 사무실을 내고 활동에 들어갔다.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지속적인 생장력을 지닌 수목 ‘맹그로브’에서 이름을 딴 이 단체는 운영자 4명이 모두 에이즈 감염자인데 전국적인 자활조직으로 성장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인도 동부의 오리사주는 1일 부바네스와르시 중심가에 길이 6㎞의 초대형 깃발을 내걸어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켰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브라질 에이즈투쟁史▼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브라질이 ‘승전보’를 전하고 있다.

브라질은 에이즈 발병 건수가 1998년에 절정에 달한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에이즈바이러스(HIV)에 감염돼 병원에 입원한 건수는 97년 이후 75%,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 수는 50%나 감소했다. 에이즈 환자의 감소로 연간 4억2200만달러를 절약하고 있다.

인구 1억7600만명의 브라질은 90년대 초만 해도 에이즈로 인해 국가재정이 바닥날 것이라고 경고를 받았던 국가. 브라질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민간 공익단체인 포드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브라질에서 에이즈의 심각성을 일깨운 촉매제는 시민운동가들이었다. 80년대 군정에서 민정으로 이양되는 과정에 터져 나온 에이즈 문제를 이들은 의료문제가 아닌 인간의 기본 인권, 나아가 갓 소생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맞서 싸웠다. 대표적인 인물이 시민운동가 헤르베르투 데 소우사. 혈우병 환자로 수혈 받는 과정에서 HIV에 감염된 그는 86년 에이즈 환자임을 대중 앞에 고백하면서 에이즈와의 공개투쟁을 선언했다. 그가 이해 최초로 조직한 전국적인 에이즈퇴치 시민조직(ABIA)은 지금은 연간 예산 50만달러에 상근직원 20명을 둔 최대의 민간 에이즈퇴치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에 앞서 85년 상파울루에서는 동성애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에이즈 퇴치단체(GAPA)가 조직돼 정부에 압력을 가했고 그 결과 86년 공중의료시스템 개혁안이 발표됐다.

세계은행은 94년 1억6000만달러, 98년 1억6500만달러의 자금을 대출해줬고 정부는 2억4000만달러의 기금을 별도로 조성했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은 거대 제약회사에 대한 승리. 96년 에이즈 환자의 면역체계를 강화하고 병세를 약화시킬 수 있는 치료약이 발명되자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수 당시 대통령은 “이 약을 에이즈 기본 치료약으로 쓰겠다”고 선언한 뒤 브라질 과학자들에게 이 약의 개발을 지시했다.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은 기본적인 인권 중의 하나”라며 제약회사들의 특허를 인정하지 않은 것.

결국 머크와 같은 거대 제약회사들이 약값을 대폭 할인해 공급키로 양보함에 따라 특허권 분쟁이 해소됐고 미국 시판가격의 5분의 1 가격에 약품을 공급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가 HIV의 증식을 억제하는 치료제의 경우 국가의 특허침범을 인정할 수 있다고 결정함으로써 브라질은 세계 에이즈 투쟁사에 귀중한 선례를 남겼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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