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세기의 빅브러더’ 후버시절로 돌아가나

  • 입력 2002년 5월 31일 17시 54분


‘에드가 후버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시절로의 회귀인가.’

미국 법무부가 30일 FBI의 ‘국내 스파이 활동’을 사실상 허용키로 하는 등 대폭 권한을 강화한 데 대해 미 민권단체와 종교계 등은 과거 FBI가 사찰로 악명을 떨쳤던 시절을 떠올리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FBI의 이 같은 ‘국내 정치사찰’은 후버 국장 시절 FBI가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반전주의자, 백인우월주의자들의 극우비밀결사인 쿠 클룩스 클랜(KKK) 등을 상대로 불법적인 감시망을 가동해온 사실이 76년 폭로되면서 지난 26년간 금지돼 왔다.

후버 전 국장은 24년부터 72년 사망할 때까지 무려 48년간 FBI 국장으로 재직하며 나치 및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지킨다는 명분 하에 광범위한 사찰을 실시했던 장본인. 그는 당시 ‘반체제 인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염탐하기 위해 대(對)파괴자 정보활동의 의미를 지닌 ‘코인텔프로’(Cointelpro)’라는 감시시스템을 도입했었다.

FBI의 이 같은 개혁안에 대해 우익 인터넷 저널리스트 매트 드러지는 “‘범죄 전(前) 수사국’이 탄생했다”고 꼬집었으며 미국민권자유연맹(ACLU)은 “빅 브러더의 ‘21세기 전체주의’가 한발 가까이 다가왔다”고 논평했다.

ACLU의 로라 머피 회장은 “FBI는 이제 시민들에게 ‘굳이 불법행위를 하지 않아도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며 예배를 드리거나 대화방에서 얘기하는 등 완전히 합법적인 행동을 해도 염탐당할 수 있게 됐다”고 개탄했다.

헌법권리센터(CCR)의 마거릿 라트너 변호사는 “FBI가 종교 및 정치 단체를 상대로 스파이활동을 하도록 한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역사를 돌이켜 볼 때 FBI는 수동적인 정보수집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슬림-미국 소사이어티의 셰이커 엘사예드 사무국장은 “이번 조치는 사회적 공포와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부정적 편견만을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FBI의 수사지침 개정과 관련, “우리는 헌법과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자유를 존중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은 이 같은 비난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존 애슈크로프트 법무부 장관도 FBI의 수사권한을 강화한 것은 알 카에다 등 테러조직이 미국을 겨냥한 후속 테러를 감행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를 예방하고 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일 뿐 민권을 침해하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밝혔다.

그동안 FBI는 9·11 테러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첩보가 있었음에도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수사지침 개정은 FBI의 테러대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개편 작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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