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 계기로 본 ‘유럽 우파의 정책’

  • 입력 2002년 5월 7일 18시 38분


핌 포르토인 당수의 지지자들이 로테르담에 있는 그의 자택에 모여들어 애도하고 있다.
핌 포르토인 당수의 지지자들이 로테르담에 있는 그의 자택에 모여들어 애도하고 있다.
6일 암살된 네덜란드의 핌 포르토인 당수(53)는 올해 혜성과 같이 등장한 정치인.

포르토인 당수는 1970년대 히피의 메카로 알려진 국제자유도시 암스테르담의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그로닝겐대학 교수가 되면서 칼럼니스트, 시사평론가로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그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사회주의자 출신의 포르토인 당수는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정책을 선택해왔기 때문이다. 동성연애자를 자처하는 그는 동성애를 인정하는 좌파의 정책과 친(親) 이스라엘의 우파 노선을 동시에 견지해왔다.

그러나 유럽언론은 대체로 그를 극우파로 묘사하고 있다. 이민에 반대하는 그의 정치적 입장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인종주의자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무슬림에 대한 그의 극단적 혐오감은 그를 ‘인종주의자’로 규정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아직 암살동기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의 이민정책이 가장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이민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살인으로 번진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그는 “이슬람은 후진 문화”라면서 “이슬람교도들이 네덜란드로 이민 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해왔다.

네덜란드에서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5%를 점하고 있다. 네덜란드가 과거 식민지였던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 인도네시아로부터의 이민에 관대한 정책을 취한 탓이다. 여기에 터키와 모로코로부터의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네덜란드내 사회적 갈등이 심화돼왔다.

그러나 빔 코크 총리를 비롯, 노동당의 신임 당수인 아트 멜케르트 등 기존 정치인들은 이민문제에 대한 언급을 꺼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5일 이 같은 문제는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인을 받아들인 영국, 북아프라카인을 받아들인 프랑스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국가는 과거의 식민모국으로서 타국을 지배한 역사에 대한 반성으로 식민지출신 국가로부터의 이민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대한 정책을 취해왔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 비(非) 프랑스 출신 조상을 둔 이민자의 인구비율이 20%까지 늘어났고 독일은 독일 밖에서 태어난 인구의 비율이 9%에 육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으며 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관용과 인내가 점점 고갈되고 있는 것.

그러나 주류 정치인들이 ‘인종주의자’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이민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는 가운데 각국의 극우파 정치인들이 이민문제를 반대의 입장에서 선점해 버린 것이 오늘날 극우파의 득세를 낳았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각국은 정치인에 대한 암살사건이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것에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관용적’이며 안정된 사회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빔 코크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사건을 듣고 좌절했다. 내 머릿속을 스쳐간 것은 ‘이곳은 네덜란드 아닌가. 관용의 나라 네덜란드가 아닌가’하는 생각이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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