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경제 가고 ‘포위경제’ 뜬다”

  • 입력 2002년 2월 5일 18시 02분


미국이 주도하는 대(對)테러전쟁의 여파로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이 신경제(new economy)에서 ‘포위경제(siege economy)’로 급속히 이행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자유시장과 개방화로 대변되는 경제논리가 규제와 안보라는 정치적 변수에 좌우되는 시대로 옮아가고 있다는 것.

제프리 가튼 예일대 경영대학장은 최근 세계적 컨설팅회사인 부즈 앨런 앤드 해밀턴사가 분기별로 발간하는‘스트래티지+비즈니스’지 최신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가튼 학장은 대테러전쟁이 계속되면서 미국이 군사적 이익과 고려를 앞세워 개방경제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를 ‘포위경제’로 명명했다.

그는 “‘포위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폐쇄적인 경제체제”라며 “자유화 대신 규제와 안보가 전면에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테러전쟁이 시장 확대와 무역 금융의 자유화로 집약되던 신경제에서 보안문제 등 경제체제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포위경제’로의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 미국은 지난 10여년 동안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추진, 세계무역기구(WTO) 설립, 신흥시장과의 유대 강화 등 시장 확대에 초점을 맞춰 왔다. 외국에 대한 경제지원도 경제개혁과 개방을 유도하는 것이 목표였다.

▽경제의 ‘냉전시대’〓세계경제 여건이 경제적 요인보다 정치적 고려에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 ‘포위경제’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가튼 학장은 “향후 국제경제 상황은 냉전시대와 비슷해질 것”이라며 “군사적 연계가 경제적 이해관계보다 중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은 대테러전쟁의 목표 달성을 위해 억압적인 정치체제와 제휴하고 이들 국가에 더 많은 경제적 혜택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협조한 파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마약과의 전쟁에 협력한 콜롬비아 등에 대규모 경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

반면 한국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신흥경제권 국가들은 대테러전쟁의 전면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충분한 주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무역마찰 격화 우려〓미 외교정책의 재군사화(remilitarization)에 대한 국제적 반발이 거세져 다국적 기업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는 점도 ‘포위경제’의 특성이다. 특히 대테러전쟁의 일환으로 특정 국가에 제재조치가 취해질 경우 다국적 기업들의 시장은 더욱 축소될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또 시설 및 직원 보호 등에 드는 보안 비용이 기업활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돼 미 다국적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그는 이밖에 전쟁비용 분담을 노리는 미국과 이를 거부하는 유럽 등 우방국간의 무역 마찰도 본격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가튼 학장은 “다른 나라의 경제발전을 무시하는 대테러전쟁과 이에 기반을 둔 ‘포위경제’는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며 개방경제와 안보 이익의 적절한 균형을 모색하라고 미 정부와 기업에 충고했다.

선대인기자 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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