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행정부 "온건파는 없다"

  • 입력 2002년 2월 4일 17시 28분


강경 외교노선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온건론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는가.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 최신호(2월11일자)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미 행정부 내의 온건파가 완전히 패배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타임은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 발언 뒤 정부 고위관리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자 재차 강경발언을 한 것은 부시 정권 지도부 내의 갈등에서 강경파들이 승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이라고 지적했다.

‘악의 축’으로 대변되는 최근의 강경 대외정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미 행정부 내의 외로운 온건파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취임 초부터 추구했던 정책의 거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흑인 최초의 국무장관인 파월은 취임 초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됐다. 비록 보수성향의 콘돌리자 라이스(48)가 백악관의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됐지만 실질적인 외교정책의 대강은 파월 장관에 의해 윤곽이 그려질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예견은 처음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다.

취임 초기 파월 국무장관은 대북정책과 관련해 대화를 강조했지만 라이스 보좌관이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매파들은 처음부터 ‘북한 압박’을 앞세웠다. 북한의 핵 검증과 대북 지원을 동시에 실시하는 것을 골자로 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그대로 계승할 것이냐의 논쟁도 ‘전면 재검토’로 결론이 났다.

이후 러시아와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일방적 파기, 간첩사건으로 불거진 러시아와의 외교관 맞추방전,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과 관련한 유럽과의 갈등 등 굵직굵직한 외교문제에서 미국은 일방주의로 치달았다.

온건론이 힘을 잃으면서 파월 국무장관의 주장은 외국에서도 힘을 얻지 못했다. 파월 국무장관은 2001년 2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등 중동을 순방하면서 양측에 즉각적인 폭력 중지와 협상을 촉구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1년 7월 파월 국무장관은 미국의 일방적인 교토기후협약 파기 선언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유럽 동맹국들을 순방하면서 3개월안에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라이스 보좌관은 며칠만에 파월 국무장관의 발언을 뒤집었다. 상호주의와 국제주의를 내세운 파월 국무장관의 온건론이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운 강경론에 완전히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붙잡힌 알 카에다 테러조직 조직원과 탈레반 병사들에 대한 처우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파월 국무장관은 제네바 협약에 따라 전쟁포로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파월 국무장관은 지난달 29일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이란 이라크 등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데 대해 국무부 관리들이 ‘수사적 표현’이라고 진화에 나서자 직원들에게 대통령의 발언을 희석시키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부시 행정부 내 온건파가 마침내 고개를 숙이는 순간이었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2001.3. 9.클린턴 정부의 대북 정책 전면 재검토 선언
2001 3.30.‘기후변화에 관한 교토의정서’ 탈퇴 선언
2001 5. 1.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강행 공식 천명
2001 10. 7.아프가니스탄 공격 개시
2001 12.11.대 테러전쟁 이라크 확전 시사
2001 12.13.러시아에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파기 통보
2002.1.29.부시 대통령, 북한 이란 이라크 ‘악의 축’ 명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