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간 대북 공조에 이상이 없다고 강조해 온 한국 정부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당혹스러운 표정이지만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일관되게 대북 강경 기조를 유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워싱턴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 지도자에게 회의감을 갖고 있다.…북한과의 대화에서는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 북한의 미사일 등 대량 살상무기 문제는 현실주의자(realist)의 입장에서 다뤄 나가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또 지난해 6월 대북정책 검토 결과 발표와 함께 북한에 대화를 제의할 때도 △북한 핵 동결에 관한 94년 제네바 합의의 개선 △미사일 문제의 검증 강화 △재래식 군비 축소 등을 대의 의제로 제시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부시 대통령은 취임 이래 시종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위협 제거를 대북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왔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번 발언은 대테러 전쟁 승리의 여파를 몰아 북한을 더 확실히 압박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대테러 전쟁에 대한 새로운 동기와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국가적 긴장과 단합을 유도하는 한편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확보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방한(19일)을 앞둔 다목적용 사전 포석으로 보기도 한다. 부시 대통령이 서울에 가면 수사(修辭)적 차원이든 아니든 김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원론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미리 자신의 본심을 분명히 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국이 차세대 전투기 기종으로 미 보잉사의 F15를 사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한 카드라는 해석도 있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이번 서울 한미 정상회담(20일)에서 한국이 F15를 사주는 대신 미국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빅딜’이 모색될 것이라는 말도 있다.
뉴욕〓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