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련본부 첫 압수수색 해설

  • 입력 2001년 11월 30일 00시 59분


《일본 경찰이 29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를 강제수색함으로써 사실상 총련의 후견인인 북한과의 관계는 더욱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 또 경찰이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북한계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지원하는데 대한 국내불만을 누그러뜨리고, 북한도 길들이겠다는 다목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수사배경▼

총련 중앙본부에 대한 압수수색은 총련계 금융기관인 조긴도쿄(朝銀東京) 신용조합의 자금유용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총련이 정경생(鄭京生·64) 전 이사장에게 횡령을 지시하고 가차명 계좌로 마련한 비자금 8억2000만엔을 받아 쓴 혐의를 잡았기 때문이다.

총련이 신용조합의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정 전이사장이 총련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으며 정 전이사장에게 횡령을 지시한 인물이 총련의 강영관(康永官·66) 전 재정국장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수사는 급진전됐다.

일본 경찰은 이번 수사를 ‘국책수사’라고 부르고 있다. 우선 막대한 공적자금을 쏟아부어 부실 신용조합을 구제하는데 대한 대국민 설득용이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파산한 총련계 신용조합에 6000억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앞으로도 4000억엔을 더 투입할 예정이다. 이에 대한 국내불만이 높다. 경찰이 한국계 신용조합인 도쿄쇼긴(東京商銀)신용조합의 전 이사장 등 2명을 업무상 횡령혐의로 구속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하나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의혹과 대포동 미사일발사, 괴선박 침투 사건 등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북-일교섭도 지난해 10월 이후 전혀 진척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횡령과 불법비자금 조성까지 눈감아 줄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수사초점▼

현재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대목은 빼돌린 돈이 북한으로 송금됐는지의 여부다. 보수당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의원은 북한에 대한 부정송금의혹을 제시하며 “이 사건은 금융사건이 아니라 국가의 안전보장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민주당 우에다 기요시(上田淸司) 의원도 “북한으로 송금된 돈이 화학병기로 바뀌고 있다”면서 “더이상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산케이신문은 “지금까지 북한에 송금된 돈은 ‘5000억엔’ ‘1조엔’설이 있다”며 재일 조선인 기업가의 말을 인용해 “한국의 친북한 국회의원이나 일본의 국회의원에 대한 정치헌금으로도 쓰였다”고 보도했다.

만약 이런 사실이 실제로 확인될 경우 커다란 파문과 함께 총련과 북한은 도덕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수사가 확대될지도 관심거리다. 강 전국장은 총련의 금고지기이며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허종만(許宗萬) 책임부의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불똥이 강 전국장의 윗선까지 튈 경우 총련은 상당히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북-일관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이 사건은 국내법에 따른 것으로 북-일관계와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총련은 성명을 통해 “압수수색은 조선총련과 재일동포에 대한 주도면밀한 정치탄압”이라고 반발했다. 또 노동신문과 총련기관지인 ‘조선신보’도 일본의 수사를 강력히 비난하는 등 전면전을 선포한 분위기다.

따라서 당분간 북-일관계는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 경찰이 빠른 시일 내에 관계정상화가 힘들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는 설도 있어 일본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서두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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