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폴 왜 수상했나]제3세계적 시선으로 테러-전쟁에 경종

  • 입력 2001년 10월 12일 01시 34분


왜 비디아다르 나이폴이 노벨문학상 100주년 수상자로 결정됐을까.

나이폴은 지난 10년간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로 꼽혀온 작가다. 그는 이미 영국의 최고상인 ‘부커상’ ‘데이비드 코엔상’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에게서 기사 작위도 받았다. 영문학계는 “언젠가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작가”라고 평가해왔다.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비정치적이다. 한림원은 제3세계의 시선을 견지한 작품을 발표해온 나이폴을 ‘문학적 항해자’라고 평가했다. “그의 문학 영역은 서인도 제도의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넘어 인도,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 아시아의 이슬람 세계를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탈레반의 전투가 한창인 시점에서 나이폴을 선택한 것은 ‘정치적’으로는 절묘하게 보인다. 서구에서 이슬람 전문가로 꼽히는 나이폴은 영미권과 아랍권 모두 인정할 만한 ‘비장의 카드’이기 때문이다.

나이폴은 소설 ‘비스워스 선생의 집’으로 제3세계를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서구 문명의 침입으로 삶의 뿌리와 전통, 공동체를 상실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 주류 문단에서는 한때 그를 ‘식민지 교육으로 영혼이 탈색된 엘리트’로 폄훼하기도 했다.

그가 사회적 명망을 얻게 된 것은 소설뿐만 아니라 기행문도 한몫했다. 그는 1970년대 말부터 소설보다는 인도와 이슬람 국가를 여행한 에세이를 꾸준히 발표했다. 특히 기행문 ‘신봉자들 사이에서’와 그 속편격인 ‘믿음을 너머’를 통해 이슬람 정서를 영미권에 알려왔다. 이슬람 국민에 대해서는 온정적인 그였지만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나이폴의 이런 점이 노벨문학상 심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쇄테러가 터진 시점은 공교롭게도 노벨상 심사위원회단의 최종 투표 직전이었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인 퍼 웨스트버그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나이폴의 작품을 읽다 보면 그가 모든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나이폴은 종교를 인간의 상상력을 망가뜨리는 멍에로 간주한다”고 평가해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다른 심사위원인 호레이스 엥달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의 선택은 정치적으로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과 미국의 보복 공격에 대해 전세계인에게 경종을 울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드워드 사이드 같은 아랍 출신 학자는 나이폴을 맹비난해 왔다. 사이드는 “나이폴의 이슬람 인식은 서양인 방문자의 시각에서 본 ‘오리엔탈리즘’에 불과하다”면서 “그는 이슬람을 서양 문명의 ‘가상의 적’으로 보고 이슬람권 내부의 다양성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해 왔다. 한편 199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이탈리아의 다리오 포는 나이폴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는 “스웨덴 한림원이 일종의 신호를 발하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나이폴은 최근의 작품을 통해 이슬람원리주의의 광기와 우매함이 진정으로 무엇을 반영하는지 밝혀왔다”고 말했다. 인도 문화계도 환영 분위기에 휩싸였다. 한 언론인은 “나이폴은 모든 세대의 인도 작가들에게 스승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출판기획자인 타룬 테즈팔은 “나이폴은 우리에게 있어 반세기 이상 우뚝선 존재였다. 인도 문학자의 한 세대 전체가 그에게 글쓰기를 배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그의 영향력을 설명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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