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특파원 현지르포]‘탈레반 이후’ 노리는 북부동맹

  • 입력 2001년 10월 7일 19시 16분


탱크와 소년
탱크와 소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미국 영국 러시아 등 ‘테러와의 전쟁’에 개입하고 있는 각 국은 벌써부터 ‘탈레반 이후의 아프가니스탄’을 구상하고 있다. 과연 탈레반 정권만 붕괴되면 20년 동안 지긋지긋한 전화(전화)를 겪은 아프가니스탄에 평화가 찾아올 것인가. 많은 전문가들과 아프간인들은 기대와 함께 불안과 의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 마무리되면 늘 새로운 전쟁이 뒤를 이었던 경험 때문이다.】

▼관련기사▼

- ⑤舊蘇 아프간戰 참전군 증언
- ④북부동맹 수도 일대를 가다
- ③북부동맹 미사일무장
- ②북부동맹 "진격할날만 기다린다"
- ①한국기자로 처음 '아프간 전장'을 가다

아프가니스탄 북부를 점령하고 있는 북부동맹은 탈레반 이후의 대체세력으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해 분주하다. 북부동맹의 외교전은 인접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북부동맹 장악지역이 타지키스탄과 인접해 있는 데다 북부동맹의 주축이 타지크인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머문 15일 동안만 해도 압둘라 압둘라 북부동맹 외무장관이 두샨베를 3차례나 방문했다. 압둘라 장관은 그 사이 파리와 로마에도 다녀왔다. 활발한 외교 덕분에 러시아와 이란의 지지를 얻어낸 북부동맹은 탈레반 공격을 위한 미국의 군사지원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북부동맹은 73년 실각 후 이탈리아에서 망명 중인 무하메드 자히르 샤 전 국왕측과도 접촉하는 등 탈레반에 반대하는 모든 국내 세력과의 연대를 추진중이다. 압둘라 장관과 지난달 살해된 아흐메드 샤 마사드 총사령관의 보좌관이었던 아흐마드 잠시드 등 북부동맹 관계자들은 “지난달 로마에 다녀왔다”며 자히르 샤 전 국왕측과의 접촉 사실을 시인했다.

북부동맹의 임시수도 파이자바드에는 “서방이 러시아의 동의를 받아 탈레반 축출 후 자히르 샤 전 국왕을 수반으로 하는 임시정부를 구성한 후 총선을 실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전후(戰後) 구상까지 마쳤으며 북부동맹도 이에 동의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북부동맹은 탈레반에 이어 가장 많은 1만5000여명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을 대표하는 합법정부로 인정받고 있어 탈레반 이후의 집권세력으로 가장 유력하다. 더구나 92년부터 96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했던 경험도 있다.

북부동맹이 자히르 샤 전 국왕을 끌어들이려는 것은 민족 통합 때문이다. 북부동맹은 타지크인과 우즈베키스탄인 등 소수민족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탈레반은 총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최대 민족인 파슈툰인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북부동맹은 파슈툰인인 자히르 전 국왕이 필요하다.

그러나 반(反)탈레반 7개 군벌이 연합한 북부동맹은 마사드 총사령관이 살해된 후 동요를 보이는 등 분열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마사드의 후계자인 모하메드 파힘 칸의 타지크계와 압둘라시드 도스툼이 이끄는 우즈벡계, 북서부 헤라트에 거점을 둔 이스마일 칸 등 유력 세력 사이에 벌써부터 이견이 드러나고 있다. 칸은 최근 “탈레반 중 건전한 세력과는 협력해야 한다”고 타협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대다수 아프간인이 과연 북부동맹의 복귀를 바라고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많은 아프간인들은 탈레반에 대한 반감과 함께 북부동맹에 대해서도 불신을 나타냈다. 북부동맹이 집권했던 4년 동안의 혼란과 무질서 부패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카불 시내는 낮에도 집밖을 나서기가 겁날 정도로 치안이 불안했고 약탈과 폭력이 이어졌다. 북부동맹군 병사들의횡포도 심했다.

기자는 취재 도중 여전한 북부동맹군의 횡포를 곳곳에서 목격했다. 초소를 지날 때마다 병사들은 돈을 요구했고 “돈을 주면 목적지까지 호위해주겠다”는 병사도 많았다. 스카젤에서 만난 한 트럭 운전사는 “탈레반 장악 지역을 통과해 이란에 가서 생필품을 사다 파이자바드에서 팔고 있다”며 “도중에 만난 탈레반군은 북부동맹군보다 훨씬 깨끗하다”고 말했다.

5년 전 카불에서 북부동맹의 몰락 과정을 취재했다는 한 외국 기자는 “북부동맹이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다시 집권해도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샨베(타지키스탄)·파이자바드(아프가니스탄)〓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