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보상소송 실태]한국인 개인보상은 요원

  • 입력 2001년 8월 20일 18시 28분


광복을 맞은 지 56년이 지났지만 일본을 상대로 한 ‘한국인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장’이 법정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한국인 소송 내용〓한국 중국 대만인 등 일제 식민통치의 피해자가 보상과 사죄 등을 요구하며 일본 정부나 기업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현재 67건. 그 중 절반인 33건이 한국인이 낸 것이다. 72년 3월 피폭자인 손진두(孫振斗)씨가 “한국인에게도 피폭자 수당을 줘야 한다”며 제기한 소송이 한국인으로선 첫 소송이며 31건은 90년대 이후에 제기됐다.

6월29일 도쿄(東京)지법에 제기한 ‘합사중지 유골반환 손해배상청구 등에 관한 소송’은 전후 보상소송의 ‘종합판’. 이 소송의 원고는 252명으로 그 중 162명은 유족이다. 이들은 유골반환, 야스쿠니(靖國)신사 합사중지, 미불금 지급 및 1인당 평균 1000만엔의 위자료(총계 24억6000만엔)를 요구했다. 야스쿠니신사 합사중지 요구는 이번이 처음.

9건 가량의 군위안부 소송은 일제의 ‘성노예제도’를 폭로하는 것으로 교과서 기술 여부와 관련돼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 밖에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미불임금 반환, 일본 원호법상 연금지급, 피폭자의 지위인정, 도쿄 군사재판의 BC급 전범판정자 보상, 강제징용 및 노동에 대한 보상 등을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됐다.

▽판결 결과와 재판부 주장〓한국인이 제기한 33건 중 현재 1심 이상의 판결이 나온 것은 29건. 그 중 3건이 일부 승소, 2건이 화해했으며 나머지 24건은 전부 패소했다. 일부 승소판결은 한국인 피폭자의 권리를 주장한 손씨와 곽귀훈(郭貴勳)씨가 각각 이끌어 냈다.

일부 승소판결 중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군위안부 3명에게 30만엔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98년 4월의 야마구치(山口)지법 시모노세키(下關)지원의 결정이었다. 일본 사법사상 유일하게 군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던 판결이었으나 올 3월 히로시마(廣島)고법에서 파기됐다.

91년 12월 군인 군속 군위안부 등으로 동원됐던 한국인 피해자 4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아시아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보상청구소송’도 10년간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3월 도쿄지법에서 전면 패소했다.

재판부의 일관된 주장은 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일본 정부의 개인에 대한 보상의무는 소멸됐으며 법적 미비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법부의 판단대상이 아니라 국회 재량에 맡겨야 한다는 것.

결국 현 상태로서는 개인보상을 받으려면 일본 국회가 전후보상 일괄법이나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독일식으로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서 기금을 만드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관계 전문가들은 세 가지 방안 모두 실현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말하고 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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