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NMD반대 러에 공조"…美NYT 우려 표명

  • 입력 2001년 2월 28일 18시 42분


한국과 러시아가 정상회담 뒤 채택한 한―러 공동성명 중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조약에 관한 합의는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에 반대하는 러시아에 동조한 것이라고 미국과 영국 언론 등이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7일 서울발 기사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미(訪美)가 1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정부가 미국이 추진 중인 NMD를 둘러싼 논란에서 공개적으로 러시아 편을 들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김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동성명에서 미사일방어망을 제한하기 위해 미국과 구 소련이 1972년 체결한 ABM조약이 보존되고 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번 성명은 미국의 아시아 우방 가운데 가장 강력한 의사표시이며 미국이 NMD를 강행할 경우 새로운 핵무기 경쟁을 불러올 것이라는 유럽국가들의 우려에 보조를 같이한 것이라고 이 신문은 풀이했다.

성명은 또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NMD 계획이 중국의 핵무기를 무용화함으로써 중국을 고립시킬 것이라는 아시아 국가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이 신문은 풀이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28일 한―러 공동성명은 푸틴 대통령의 외교적 승리로 비치고 있다며 한국은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NMD 계획을 암묵적으로 비판함으로써 미국과의 유대를 흐트러뜨렸다고 논평했다.

이 신문은 한국의 러시아 입장 지지는 한국과 미국간의 고조된 긴장을 강조한 것이라며 한국 정부 관리들은 NMD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켜 김대통령이 북한과 화해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햇볕정책’을 곁길로 빠지게 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또 이번 성명은 한국정부가 NMD에 대해 가진 생각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시사한 것으로 한국은 NMD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계획을 재개하도록 자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AFP통신도 이날 서울발 기사를 통해 김대통령이 ABM조약을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라고 강조한 것은 미국의 NMD계획에 은연중 반대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정부, NYT보도 강력부인▼

정부는 28일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강행과 관련해 한국이 이에 반대하는 러시아의 편에 선 것 아니냐’는 내외신 보도에 대해 당혹해하며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외교통상부는 이날 오전 ‘한―러 공동성명과 NMD 관련 우리의 입장’이란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 정부는 NMD문제에 관한 입장을 밝힌 바 없으며, 이번 한―러 공동성명에도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동성명에서 탄도탄요격미사일(ABM)조약의 보존과 강화를 언급한 것은 지난해 4월 뉴욕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의 공동선언문과 같은 해 6월 미―러 정상회담 발표문 등에도 모두 포함된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이날 오후에도 ‘한―러 공동성명이 NMD 추진에 반대 내지 비판하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거나, 반대하는 국가(러시아 중국)의 입장을 지지한 것으로 해석한 것은 우리 정부 입장과 전혀 맞지 않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새로 배포했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자칫 7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본의와 다르게 엉뚱한 ‘NMD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해 조기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NMD 불씨’가 쉽게 꺼질 것 같지 않은데 있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NMD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거론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부는 늦어도 다음달 초까지는 공식 입장을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고위당국자도 “NMD문제는 미국과 이에 대항하는 중국―러시아―북한 연대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띠고 있는 만큼 신중하고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NMD 문제를 신중히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여러 경로를 통해 드러난 정부의 입장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공연히 북한이나 중국 러시아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정빈(李廷彬)외교부장관은 지난달 중순 상공회의소 초청 연설에서 “미국이 NMD를 강력히 추진하는 것보다 이 같은 원인 제공을 해결하는 것이 더 빠르고 손쉬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해 우회적으로 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천용택(千容宅) 국회국방위원장도 1월 “NMD이건 전역미사일방어(TMD)계획이건 어떠한 새로운 미사일 방위계획도 군사적 득이 없고 북한과 중국을 자극할 뿐”이라고 말했었다.

문제는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이를 언명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가 28일 “이처럼 미묘한 문제는 미국과 러시아가 조율하면 된다. 우리가 앞장서서 이렇다 저렇다 할 필요가 없다”고 한 말 속에 정부의 문제인식과 고민이 담겨있는 셈이다.

▼ABM과 NMD▼

72년 미―소간에 체결된 탄도미사일방어(ABM)조약은 ‘양국이 대륙간미사일(ICBM)을 격추할 요격미사일을 100기씩 보유하되 한 지역의 방위만 허용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선제 핵공격국가가 핵보복을 받을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상호 억제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기초로 하고 있다.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체체는 이런 핵억제 논리를 거부하고 있다. 국토방위시스템을 갖춰 핵공격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구상이다. NMD 추진은 필연적으로 ABM의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

NMD체제 구축은 핵공멸 위협으로 간신히 유지되어온 세계 전략 균형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림으로써 새로운 군비경쟁을 촉발하게 된다. 이 때문에 러시아 중국만 NMD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영국을 제외한 모든 서방국가들도 반대하고 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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