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레인 서구화 물결의 현장]음주 공식 허용

  • 입력 2001년 2월 4일 18시 34분


쿠웨이트와 바레인은 이슬람권에서도 가장 서구화된 국가들로 손꼽힌다. ‘차도르’ ‘일부다처제’ 같은 단어로 상징돼온 이슬람 문화에 대한 막연하고도 부정적인 인식은 취재를 마치면서 “너무 편향적인 게 아니었나”라는 느낌으로 변했다.

두 나라는 어딜 가도 휴대전화를 든 젊은 여성 운전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시내 곳곳에서 손을 잡고 깔깔거리는 청춘 남녀들의 모습은 우리와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환전을 위해 들른 은행이나 취재차 방문한 관공서에선 세련된 정장을 한 여성들이 매력적인 미소로 방문객을 맞았다.

쿠웨이트 해변에 자리잡은 고급 레스토랑과 백화점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주차장은 빈자리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차들이 빼곡했다. 지난해 계속된 고유가 덕택이 아닌가 여겨졌다.

쿠웨이트식 사랑방 좌담인 ‘디와니야’에서 만난 한 쿠웨이트인은 기자에게 자신의 보트를 타고 바다낚시를 한 뒤 별장으로 사냥을 하러 가자고 해 석유 부자들의 일상 생활을 실감케했다.

쿠웨이트와 달리 음주가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바레인은 밤마다 화려한 빨간 네온사인들이 거리를 수놓았다. 대부분 호텔과 술집들이었는데 주말이 되자 술을 즐기기 위해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한 호텔의 술집에선 아름다운 흑인 미녀들이 아슬아슬한 드레스를 걸친 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손님들은 무희에게 꽃목걸이(2만원 상당)를 팁으로 주곤 했다. 수십개의 목걸이를 던져주는 손님들도 부지기수였다.

바레인 사막 한가운데에서 본, 물 한방울 없이 수백년을 살아온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는 엄청난 관광거리로 선전되고 있지만 기자가 볼 땐 버려진 나무 한 그루에 불과했다. “이런 것까지 관광거리로 활용하고 있는 데 우린 도대체….”

바레인을 떠나기 전날 방문한 모래골프장은 매우 인상적인 볼거리였다. 골퍼들은 잔디매트를 들고 다니며 그 위에서 공을 쳤다. 설탕같이 고운 흑색 모래로 다져진 그린과 홀컵을 향해 굴러가는 흰색 골프공, 공이 지나간 물결같은 흔적들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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