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사건 공동발표 의미]美 '피해자 배상' 침묵

  • 입력 2001년 1월 12일 18시 30분


한국과 미국이 15개월간의 공동조사 끝에 12일 발표한 노근리사건의 진상과 대책은 한미 동맹관계를 수평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린 역사적인 성과지만 정작 그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던 피해주민들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것이었다.

우리측은 “피해주민에게 유리한 내용을 공동발표문에 최대한 포함시켰다”고 했지만 미측은 “양민을 고의로 사살하려는 의도도, 발포명령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조사는 한미동맹 정신에 입각해 진행됐지만 그 결과는 각자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의미와 성과〓미국은 ‘미군의 민간인 사살’이라는 노근리사건의 실체를 인정하고 빌 클린턴 대통령이 유감 성명을 발표하는 ‘성의’를 보였다.

정부 당국자는 “클린턴 대통령의 ‘유감표명(deeply regret)’은 ‘사과’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며 “미대통령이 전쟁 중 희생된 민간인에 대해 공식 사과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 내 참전단체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당국자는 덧붙였다.

특히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양국 정부의 공조체제는 ‘과거의 비극적 사건’을 공동 규명함으로써 한미관계를 더욱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측은 6개 문서기록보관소에서 ‘6·25전쟁’ 관련자료 100만여건을 검색해 노근리 핵심자료 490건을 우리측에 넘겼고, 노근리 관련 참전군인 7000여명을 추적 탐문해 175명의 증언을 청취하는 등 성의를 보였다. 이들의 증언 청취록은 6500여쪽에 달한다.

▽문제점과 전망〓미측은 사건의 실체는 인정하면서도 ‘증거부족’이라는 이유로 그 책임은 철저히 외면했다. 따라서 피해주민들의 보상문제와 직결되는 △공중공격 △사격명령 △희생자의 수 등에 대해서는 양측 입장이 공동발표문에 병기되는 수준에 그쳤다.

정부는 “피해주민의 입장을 적극 반영한 발표문”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앞으로 본격화될 피해배상소송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각종 문서 등 결정적 증거는 모두 미측이 가지고 있다는 것도 법정싸움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경북 칠곡군 왜관교 폭격, 마산 창녕읍 여초리 기총소사 사건 등 정부에 신고된 유사사건 61건에 대한 처리방침에 대해 양국 정부가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번 노근리사건의 선례가 장기적으로 미군과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사살 등 국제적 유사사건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관심거리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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