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늄탄 공포 확산]미국-EU '발칸 신드롬' 갈등

  • 입력 2001년 1월 5일 18시 37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발칸지역에 근무했던 군인이 암을 비롯한 질병에 시달리는 현상인 ‘발칸 증후군(신드롬)’의 원인을 놓고 티격태격하고 있다.

EU 지도자들은 최근 발칸 신드롬이 열화우라늄탄과 관계가 깊다며 유일한 사용국인 미국에 대해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또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지 말라고 촉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일각에서는 EU의 이 같은 반발은 지난해 독자 방위군 창설 움직임과 맥을 같이하는 ‘유럽 홀로서기’를 기저에 깐 것이란 분석도 있다. EU는 미국이 50여년간 주도해온 집단안전보장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벗어나기 위해 별도의 신속대응군을 만들어 작전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할 계획이었으나 미국의 강력한 반대로 결국 NATO 관리하에 두기로 했다.》

▽피해상황과 열화우라늄탄〓인명피해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이탈리아. 병사 6명이 백혈병으로 숨진데다 30여명이 두통 불면증 등을 호소하고 있다. 벨기에 5명, 포르투갈 1명, 체코 1명이 암 등으로 희생됐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도 각각 수명이 백혈병 치료를 받고 있다.

▼'독자군'과 맞물려 대립▼

이들은 1994∼95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과 1999년 코소보에서 근무한 병사들. 미군은 보스니아에서 1만발 이상, 코소보에서 3만발 이상의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사용된 열화우라늄탄은 대부분 기관총용 직경 30㎜ 탄. 탄두를 포함한 전체 길이는 86㎜, 무게는 292g.

미군은 1991년 걸프전 때에도 이 무기를 많이 사용했다. 당시 참전 미군 중 암 만성두통 등 이상질환자가 많아 ‘걸프 신드롬’이란 말도 생겼다. 이라크에서도 백혈병 신장병 기형아 사산 등이 늘어났다는 보고도 있었다.

▼伊軍 6명 백혈병 사망▼

▽유럽의 반발과 미국의 반응〓이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탈리아의 줄리아노 아마토 총리가 공개적으로 미국을 겨냥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부터. 동병상련의 프랑스와 포르투갈, 벨기에도 미국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구하며 가세했다.

급기야 로마노 프로디 EU 집행위원장도 4일 발칸신드롬에 대해 EU차원에서 독자적으로 실체규명에 착수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고 밝혔다.

EU가 강하게 반발하는 데는 미국이 자국 병사에게는 열화우라늄탄의 유해 가능성에 대해 사전 주의조치를 취했으면서도 EU 회원국에는 정보를 알려 주지 않았다는 의심이 깔려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걸프전 참전군인 역학조사결과를 소개하면서 열화우라늄탄과 질병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케네스 베이컨 미국방부 대변인도 4일 “발칸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했던 군인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증거를 찾지 못했다”면서 열화 우라늄탄을 계속 사용할 것임을 시사했다.

▼진상규명 싸고 첨예한 대립▼

미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EU의 우려가 확산되자 관련국과 긴밀히 협조해 나가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NATO가 9일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북대서양위원회와 정치위원회를 소집해 이 문제를 논의키로 한 것은 미국의 양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칸 신드롬’의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미국과 EU간 갈등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우라늄탄 국내 얼마나 있나…"전시대비 대전차포탄 보유"▼

지난해 5월 주한 미군이 사용하는 경기 화성군 매향리의 쿠니사격장 문제가 사회문제로 됐을 때 열화우라늄탄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미 공군 전투기조종사 출신인 반전평화운동가 브라이언 윌슨은 국제세미나 참석차 한국에 왔다가 “매향리 사격장에서 BDU라고 새겨진 폭탄파편을 발견했는데 이는 열화우라늄폭탄(Bomb Depleted Uranium)의 약자”라며 “미군이 우라늄폭탄을 훈련에 사용한 증거”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주한 미군사령부 측은 기자회견을 통해 “매향리 사격장에서 발견된 ‘BDU’라고 표시된 폭탄은 11.3㎏의 모의폭탄(Bomb Dummy Unit)으로 실전용 고폭탄이 아닌 콘크리트 연습탄”이라며 “열화우라늄의 특성상 폭탄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한미군 측은 “전시에 대비해 열화우라늄이 함유된 120㎜ 대전차포탄과 A10기용 30㎜ 기관총탄은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열화우라늄포탄이나 총탄을 훈련목적으로 사용한 적은 없으며 전시 대비용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주한미군은 덧붙였다.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는 보안상 공개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국내 방위산업체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선 아직까지 열화우라늄탄을 생산한 적이 없다”면서 “탄의 종류도 육군의 탱크와 아파치 헬기에서 사용하는 120㎜포탄과 공군의 A10기가 사용하는 30㎜짜리가 사실상 실전에 배치된 전부”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유럽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발칸신드롬’의 원인을 제공한 것도 이 2종류의 열화우라늄탄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