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재일금융]민단주체 새 금융기관 설립 가속도

  • 입력 2000년 12월 18일 18시 52분


일본 정부가 간사이(關西)흥은과 도쿄(東京)상은을 파산 처리한 것은 단지 경제 논리에 따른 것만은 아니다. 한국계 민족 금융기관이라는 점에서 한―일관계까지 면밀히 계산한 결과다. 한국계 신용조합을 대표해 온 두 신용조합이 한꺼번에 쓰러짐으로써 이제 새 은행 설립 주체는 한국민단으로 넘겨졌다. 한국 정부와 일본 금융재생위원회, 민단 등 세 기관의 손에 한국계 신용조합의 처리가 놓이게 됐다.

▽일본 정부〓일본 정부는 두 신용조합을 파산 처리하며 “한국계라고는 해도 일본 국내법에 따라 설치된 일본의 금융기관”이라며 민족문제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려 했다.

그러나 금융재생위(위원장 야나기사와 하쿠오·柳澤伯夫)가 한국계 신용조합의 부실을 알고서도 그동안 ‘파산 선고’라는 극약 처방을 쓰지 않은 것은 역시 민족 의식을 고려해서다. 하지만 인수 기관이 없는 상황에서 예금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2002년 4월 이후 파산하면 양국간에 더 큰 문제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파산 선고를 결단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발등의 불을 끈 뒤 한국계 새 은행이 설립되면 여기에 넘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주일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건전한 한국계 금융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부실한 한국계 신용조합을 흡수할 새 은행 설립을 지원하고 은행인가 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협력을 얻어내는데 주력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일본측도 “민족 금융기관을 말살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어 양국 정부 사이에 어느 정도 의견 조율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 재정경제부는 현재 정부 이름으로 신용조합에 빌려준 360억엔을 회수해 한국계 새 은행에 출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 민단〓간사이흥은 중심의 재일한국인신용조합협회(한신협)와 도쿄상은 중심의 한일은행설립준비위원회가 대립해왔다. 한국민단(단장 김재숙·金宰淑)은 이중 한신협측을 지지했다. 그동안은 제3자 입장이었으나 두 신용조합이 몰락함에 따라 민단의 활동 무대는 그만큼 넓어지게 됐다.

한국 민단은 즉각 “새롭고 튼튼한 새 은행을 만드는데 재일동포 사회의 모든 역량을 집결시키겠다”고 밝혔다. 재일동포 단체 가운데 최대 규모인 한국 민단이 은행설립 주체가 되면 누구도 반대하기 어렵다. 한국 정부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다만 각자 은행 설립을 추진해 오며 대립해 온 두 그룹을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지가 과제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공적자금 10조엔 퍼붓고도 구조조정 못끝내▼

‘금융시스템의 재생’을 위해 출범한 일본 금융재생위원회가 발족 2년을 맞았다. 내년 초 정부조직이 개편되면 업무는 금융청으로 넘어간다.

이 위원회는 그간 엄청난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아직 금융불안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은 부실금융기관 파산처리와 공적자본 투입으로 금융재편을 완성할 계획이었다. 지난해 3월 15개 대형은행에 7조5000억엔을 투입하는 등 10조여엔을 쏟아 붓고 각 금융기관의 경영통합과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을 약속받았다. 90년대 초부터 따지면 금융기관에 들어간 공적자금은 25조엔.

이에 따라 대형은행은 미즈호파이낸셜그룹 등 4대 그룹으로 재편됐으며 경영통합이 진행되고 있지만 최근 다시 금융불안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공적자금을 쏟아 부어도 기업 도산이 이어져 부실채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대형은행은 92년 이후 총 50조엔 이상의 부실채권을 정리해왔으나 현재 부실채권 잔액은 17조2000억엔(9월말 기준)이나 된다.

최근에는 재일 한국인계 신용조합인 간사이흥은과 도쿄상은, 조총련계 7개 신용조합이 파산한 것을 비롯해 중소 금융기관 파산이 잇따르고 있다. 생명보험회사도 경영이 악화돼 올 들어서만 4개 생보사가 파산했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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