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재일금융]간사이興銀 파산 교민 충격

  • 입력 2000년 12월 17일 18시 36분


《한국계 최대 신용조합인 간사이(關西)흥은이 파산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간사이흥은의 본거지인 오사카(大阪)의 재일동포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16일 재일동포들이 경영하는 음식점 밀집지역인 쓰루하시(鶴橋)에서 만난 한 동포는 “앞으로 돈을 대출받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며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다른 재일동포는 “파산에도 불구하고 예금이 보호된다고 하지만 재일동포의 중요한 구심체 하나를 잃어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조합원 9만5천명▼

간사이흥은은 55년 신한은행의 회장인 이희건(李熙健)씨가 설립한 오사카흥은이 모체. 93년 효고(兵庫) 시가(滋賀) 와카야마(和歌山) 나라(奈良)신용조합을 흡수했고 95년에는 기후(岐阜)상은을 합병해 명실공히 일본내 최대 한국계 신용조합으로 성장했다.

조합원 9만5000여명에 올 3월 말 현재 총예금 1조914억엔, 대출금 9674억엔으로 지방은행 중위급의 규모를 자랑했다. 간사이지방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간사이흥은의 도움을 받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유력 신문의 오사카지역판은 ‘재일동포의 기둥 크게 흔들리다’(아사히), ‘간사이흥은, 파탄처리에 강한 분노’(요미우리), ‘재일동포에 불안한 세밑’ 등의 제목으로 간사이흥은의 파산이 몰고올 여파를 걱정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재일동포 기업 중에는 간사이흥은의 융자에만 의존하고 있는 곳이 많다. 최악의 경우 1만여개 가까운 기업이 연쇄도산할 수도 있다”는 박일(朴一) 오사카시립대 교수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한국민단 오사카지방본부(단장 김창식·金昌植) 소속 지부장 등 150여명은 16일 오후 긴급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관련기사▼

日 간사이興銀·도쿄商銀 최종파산…법정관리인 파견

▼민단 특별대책委 결성▼

이들은 재일동포의 경제기반을 지키기 위해 19일 오사카의 관청가에서 수천명의 재일동포들이 참여하는 집회를 여는 한편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도 결성하기로 결정했다.

간사이흥은도 16일 저녁 46개 지점장들을 불러들여 상황을 설명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는 “민족금융기관에서 일하고 있다는 긍지를 바탕으로 고객인 재일동포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분발하자”는 발언이 잇따랐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간사이흥은을 관할하고 있는 긴키(近畿)재무국측은 “흥은이 재일동포 사회에서 수행해온 역할은 매우 크다”며 이번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항의를 해봐야 소용없다며 “이번 사태를새로운 한국계 금융기관을 만드는 계기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재일동포들도 많았다.

▼이정림 간사이興銀 이사장 인터뷰▼

파산선고를 받은 간사이흥은의 이정림(李正林)이사장은 “일본 금융청의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내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이사장 자격으로는 마지막으로 16일 밤 오사카시 후데가사키(筆ヶ崎)의 이사장 집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관재인은 받아들이면서 행정소송을 내겠다는 것은 모순 아닌가.

“관재인은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갖고 들어오는 사람이다. 따라서 막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행정소송은 다르다. 금융청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간사이흥은이 해체될 수도 있지 않나.

“해체되더라도 출자금은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출자금에는 재일동포 조합원 9만5000여명의 땀이 배어 있다.”

그는 파산 처리되면 돌려받지 못하는 출자금(301억엔)의 반환과 부실 경영을 하지 않았다는 명예회복을 위해 소송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간사이흥은과 금융청의 가장 큰 이견은 무엇인가.

“부실 채권의 규모다. 우리가 회수 가능하다고 보는 채권을 금융청은 일방적으로 부실 채권으로 몰아붙였다.”

양측이 주장하는 부실 채권 액수는 1600억엔 가량 차이가 난다. 그는 금융청의 업무 태도에 대해 “사형 집행을 하고 판결을 내리는 것과 같다”며 ‘파산 시나리오설’을 제기했다. 또한 주일 한국대사관이 간사이흥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변호해 주지 않은 데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

이 이사장은 “이미 관재인을 만나 재일동포 기업과 직원들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며 “지점장 모임에서는 제2의 출발로 생각하고 분발할 것과 새 은행이 생길 경우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실력을 길러 두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오사카〓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