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 韓-佛 합의]'반환'에서 '교환'으로 돌파구

  • 입력 2000년 10월 19일 19시 16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이 19일 정상회담에서 외규장각 도서 반환 원칙에 합의함에 따라 7년여를 끌어온 이 문제가 해결의 돌파구를 찾게 됐다.

프랑스가 외규장각 도서를 우리나라에 장기 임대하는 대신 한국은 이에 걸맞은 가치를 가진 도서들을 프랑스에 장기 임대해주는 식으로 구체적인 타결점을 찾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가 갖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 297권 중 국내에 없는 유일본 60여권이 돌아올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번 협상 결과는 30%의 성공인 동시에 70%의 실패일 수밖에 없다. 프랑스가 보관 중인 외규장각 도서들은 병인양요(丙寅洋擾·1866년) 때 약탈해간 것이 분명한데도 ‘반환’이 아니라 ‘등가성 원칙에 따른 장기 임대 형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즉 프랑스가 약탈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데다 외규장각 도서를 가져오는 대신 다른 도서를 주기로 한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교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이 앞으로 외국으로 유출된 문화재를 환수하는데도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약탈 문화재 반환을 요구할 경우 다른 나라들도 외규장각 도서 반환 사례를 들어 ‘등가성 교환’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문화재 전문가들은 장기임대 교류식 반환에 반대해 왔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은 프랑스측에서 조건없는 반환에 응하지 않고 있어 상호 장기 임대 교류가 차선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신 어떤 도서들을 프랑스에 보낼 것인지에 관한 실무 협상에서 또다시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또 외규장각 도서와 가치가 비슷한 도서들은 서울대 규장각이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장서각 소장 도서들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데 이들 기관의 반발 가능성도 높다.

서울대 규장각관장 정옥자교수(국사학과)는 “프랑스측에 장기 임대를 해줄 만한 문화재라면 장서각에 있는 것들이 포함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규장각에서 회의를 소집해 결정하겠지만 일단 ‘외규장각 문서를 가져오는 대신 다른 자료를 내줄 수는 없다’는 것이 현재의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민현구교수는 “일단 한 단계 진행시키기 위해 합의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말 그렇게 해서라도 들여올 만큼 가치가 있는 자료인지에 대해 면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차수·김형찬기자>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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