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수교 주역 10년만에 재회…최호중-셰바르드나제

  • 입력 2000년 10월 5일 18시 50분


10년전 한-蘇수교 서명 당시
10년전 한-蘇수교 서명 당시
“이게 얼마 만입니까.” 한―러 수교의 주역이 10년 만에 만났다. 90년 9월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양국의 외무장관으로서 ‘한소 수교공동성명서’에 서명했던 최호중(崔浩中) 외교협회장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그루지야 대통령이 2일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의 대통령궁에서 반갑게 손을 잡았다. 이날의 만남은 수교 10주년을 맞아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최씨의 제의를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받아들여 이뤄졌다.

최씨는 외교현장을 떠났고 한때 세계 외교계를 주름잡던 셰바르드나제 대통령도 이제는 유럽 소국(小國)의 지도자가 됐다. 하지만 두 사람은 허물없는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고 최씨를 수행했던 러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가 전했다.

두 사람은 당초 91년 1월1일로 예정됐던 수교시기를 전격적으로 3개월여 앞당기기로 합의했던 10년 전의 상황을 회상하며 새삼 감회에 젖었다.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당시 소련 지도부내의 반발을 무릅쓰고 국교정상화를 이룬 것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신사고 외교정책’의 가장 큰 성과였으며 결국 옳았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2┼4’ 회담에 참여한 독일 통일의 주역 중 한 명으로 지난달 말 통독 1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독일을 다녀온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최근의 한반도 정세에도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한 선수단의 동시입장 장면을 감명 깊게 봤다. 그러나 북한과 같은 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기 때문에 교류와 접촉을 늘려 이를 허물어야 한다. 최근의 긍정적 분위기가 언제든지 반전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인내심과 시간을 갖고 해야 한다.”

인구 500만명의 그루지야는 한국 공관도 없고 한국과의 교류도 거의 없는 유럽의 변방. 그는 소련체제의 기틀을 잡은 이오시프 스탈린이나 개방정책의 전도사로 결과적으로 소련해체를 가져온 자신이 모두 그루지야인이었다며 “소련의 흥망이 그루지야인에 의해서 결정됐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경제 발전 경험을 배우고 싶다”며 앞으로 한국의 각계 인사들이 활발히 그루지야를 방문하고 한국기업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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