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업주부 증가 분석]"신경제가 舊가정 되살린다"

  • 입력 2000년 9월 9일 17시 05분


미국의 중상류층 맞벌이 가정에서는 최근 신경제가 가져온 호황으로 수입에 여유가 생기자 부인이 일자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돌아선 사례가 늘고 있다.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8일 이같은 새로운 현상을 전하며 “신경제가 놀랍게도 구(舊)가정을 가져오게 했다”고 평가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통계에 따르면 98년 가구당 연간 수입이 25만∼50만달러인 가정에서 부부 중 한 사람만 직장 생활을 하는 비율은 절반 가량이었다. 이는 92년의 38%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그동안 부부 중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 둔 가정이 많아졌음을 뜻한다. 남편이 돈을 버는 경우가 91%였으며 아내가 돈을 버는 경우는 9%였다.

또 연수입이 50만∼100만 달러인 가정에서 부부 중 한 사람만 직장 생활을 하는 비율은 58%였다. 이는 6년전의 50% 수준에 비해 역시 증가한 것이다. 돈을 버는 사람의 99%는 남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수입에 따른 비율의 차이를 비교해 보면 남편 소득이 높을수록 부인이 직장을 그만두는 경향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남편의 소득 증가가 남성과 여성이 바깥일과 집안일을 분담해 온 전통적인 부부 역할을 부활하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

변호사인 수잔 외그너(34)는 대학 졸업 직후만 해도 같은 직업을 가진 남편보다 수입이 약간 많았다. 그러나 남편이 지난해 인터넷 회사로 옮기며 연봉 100만 달러와 스톡옵션을 받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연봉 8만 달러가 보잘것없이 느껴져 고민하다 결국 자녀 양육에 전념키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아이들을 돌보는 즐거움이 크지만 최근 신용카드를 신청했다가 ‘무직’이라며 거절당했을 때는 전업 주부의 설움을 톡톡히 맛봐야 했다.

전업 주부로 돌아선 이들 가운데는 맞벌이 시절 보모에게 아이들을 맡긴 채 직장에서 녹초가 돼 귀가했던 고달팠던 때에 비하면 요즘 생활이 훨씬 낫다는 이가 많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내가 직장을 그만 두고 가사에 전념하는 것을 환영한다.

실리콘 밸리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마이클 볼튼은 “가정으로 돌아온 아내 덕분에 남편들은 이제 과거보다 훨씬 더 직장 생활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고 좋아했다.

살림이 나아지면서 최근 직장을 그만 둔 주부 중 상당수는 아이들이 장성하면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남편들도 이를 이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일과 가정 중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가정을 택한 ‘신경제 시대 전업 주부’는 관습에 따라 선택의 여지없이 집안에 머물러 있어야 했던 과거의 전업 주부와는 구별된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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