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김학준고문 캐나다 퀘벡 '세계정치학회' 참관기

  • 입력 2000년 8월 6일 18시 58분


세계정치학회(IPSA) 제18차 세계대회가 캐나다 퀘벡시 힐튼호텔에서 2200명의 학자가 참석해 약 850편의 논문을 발표한 뒤 5일 막을 내렸다.

중심 주제는 ‘세계자본주의 아래서의 통치와 공동체’였으나 다양한 분야가 다뤄졌다. 필자에게는 대체로 다음의 논문들이 중요했다.

첫째, 세계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확산에 따라 세계적 지역적 국가적 지방적 차원에서 정치의 제도와 행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느냐의 물음이다. 발표자들은 “공산주의의 소멸이 남겨 놓은 권력 공백을 자유시장경제의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세계자본주의가 메웠다”고 평가한 뒤, “이로써 초국가적 경제조직과 기업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됐으며 그 결과 주권국가의 권력과 정체성은 크게 약화되고 있다”고 보았다.

일부 토론자들은 ‘민중중심적 단체’ 또는 ‘비정부적 시민운동단체(NGO)’의 확산과 국제적 연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초국가적 대기업들이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경영을 추구할 때 횡포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은 시민단체들로부터 나올 수 밖에 없으며 이 시민단체들이 국제적으로 연대해 투쟁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둘째,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동유럽등 비(非)서구지역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독재 또는 폭정에 대한 경고이다. 발표자들은 이 지역의 많은 나라들에서 언론탄압 부정선거 불법적 기소와 불공평한 재판 등 비민주적 통치행위가 저질러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미얀마의 군사 독재에 저항하는 아웅산 수지여사의 논문이 버마망명정부의 아메리카 담당 장관에 의해 발표됐다.

셋째, 자유민주주의 나라에서도 정치 엘리트 중심의 민주주의로부터 시민사회중심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와 의회 및 정당 지도자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어 선진 민주국가들에서도 행정의 경직화와 관료의 행정편의주의가 유행하고 심지어 권력형 부정부패가 뒤따르는 만큼 시민사회의 지도자들이 정치권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민사회 지도자들의 부패 문제도 제기됐다. 시민운동가들은 누가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느냐, 특히 시민운동가들이 은밀히 정치권과 결탁할 때 어떻게 잡아내느냐 등의 문제다. 결론적으로 시민운동가들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공공윤리의 제고(提高)와 정치 개혁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넷째, 환경우선주의의 강조다. 1992년 리우데자네이로의 환경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환경의 유지가 가능한 성장’ 명제가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21세기에 인류는 환경파괴가 낳는 갖가지 재앙에 시달릴 개연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다섯째, 여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진출이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강력한 제의다. 발표자들은 “선진국에서조차 몇몇 나라들을 빼놓고는 민주화가 남성편향으로 이뤄졌으며,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비서구권에서는 남성편향적 민주화의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고 비판하고, 공직에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대표될 수 있는 쿼터제가 법적으로 마련해야 하며 이 목표의 실현을 위해 여성들의 국제적 연대를 통한 투쟁이 전개돼야 한다고 제의했다.

여섯째, 국제적 분쟁과 국내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소시키기 위해 협상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만큼 협상의 방법과 기법을 정치학자들이 치밀하게 이론화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여러 편의 논문들이 발표됐다.

(본사 편집논설고문·인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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