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러전문가 시각]"급진적 개방강요땐 역효과"

  • 입력 2000년 6월 15일 19시 46분


《동아시아 지역 정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세계 주도국들의 시각은 미묘하다. 한반도의 오랜 냉전을 종식시키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여는 큰 발걸음에서 ‘중요한 공헌’을 했다는 원론적 혹은 외교적 평가의 이면에는 ‘강국의 의견이 충돌하는 접점’ 한반도에 대한 주변 열강들의 복잡한 심사가 잠복해 있다. 각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전문가들의 기고를 통해 그 일단을 들여다본다.》

■러시아 이반 자하르첸코 (이타르타스통신 기자)

두 정상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예상보다 훨씬 큰 성과를 얻었다. 정상회담은 현재의 적대적인 정치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용기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이런 노력이 일관되게 이어지고 불신의 벽을 허물려는 새로운 시도가 계속돼야 한다.

이번에 합의한 원칙을 어떻게 실현시키느냐가 앞으로 과제다. 72년 7·4공동성명과 92년 남북한 총리가 합의한 기본합의서처럼 실제로 성과가 없었던 역대 합의의 운명이 되풀이돼서는 안된다. 이번 공동선언 내용이 실천되지 못할 경우 남북한 국민은 좌절을 느끼고 남북관계는 오히려 후퇴할 것이다.

많은 것은 한국 정부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법적인 문제에서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북한이 ‘이적 단체’로 규정돼 있는 상황에서 그 ‘괴수’를 서울로 초청해 회담을 갖는 것은 모순이다.

북한에 너무 급진적인 개방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북한은 체제에 대한 위협이 없다고 판단될 때만 문을 열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경제 지원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남북한은 6·15선언으로 통일에 대한 원칙에는 충분히 의견의 일치를 봤다. 더 이상 새로운 합의와 선언보다 약속의 실천이 중요하다. 북한은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라는 미국 등 서방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서방의 도움이 필요한 북한으로서는 중요한 부분이다.

주한 미군 문제가 언젠가 핵심적인 사안이 될 것이다. 북한은 미군의 주둔을 여전히 ‘위협적’이라고 보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안에 미군이 철수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 개인이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모습을 공개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한국인들이 TV를 통해 그의 육성과 모습을 보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은 의미가 있다.

이번 정상회담이 실제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는 적어도 김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이산가족의 상봉 등 합의 상황에 대한 실천이 어느 정도 이뤄진 8월경에 더욱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다. 앞으로도 남북간에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날 수 있고 적대감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리·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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