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美전문가 시각]"한국,한반도문제 해결 주도권 회복"

  • 입력 2000년 6월 15일 19시 46분


《동아시아 지역 정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세계 주도국들의 시각은 미묘하다. 한반도의 오랜 냉전을 종식시키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여는 큰 발걸음에서 ‘중요한 공헌’을 했다는 원론적 혹은 외교적 평가의 이면에는 ‘강국의 의견이 충돌하는 접점’ 한반도에 대한 주변 열강들의 복잡한 심사가 잠복해 있다. 각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전문가들의 기고를 통해 그 일단을 들여다본다.》

■美 조엘 위트 (브루킹스 연구소 객원연구원)

남북정상회담은 실질적으로 남북 양측이 모두 승리한 회담이었다. 김대중대통령은 이산가족재회와 남북 당국간 대화재개 등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성공을 거뒀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키로 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1994년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김일성에게 서울에 가면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이라며 만류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김대통령이 한반도 문제해결에서 한국이 다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한국은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던 1990년대 초반까지는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나 그 후 북한 핵문제가 터지면서 김영삼정부의 요청에 따라 미국이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북한의 입장에서도 정상회담은 실질적인 성공이었다. 북한은 한국으로부터 더 많은 경제지원을 확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성공은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지원을 얻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김위원장은 또 ‘테러를 일삼는 경향이 있고 금발의 미인을 좋아하는 은둔 지도자’에서 ‘다른 나라들과 함께 사업을 할 수 있는 지도자’로 이미지 변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외교적 공세가 대내 및 군사 정책에서 진지한 변화를 예고하는 전조인지, 혹은 최소의 경비를 들여 외부로부터 혜택을 받아내려는 또 다른 책략인지는 불분명하다. 우리는 북한이 1980년대에 경제 개혁 분야에서 1보 전진 후 2보 후퇴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이 정상회담에 대해 내심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추측과 한미간 이견에 관한 최근 언론 보도는 과장된 것이다. 한미일 간에 북한 미사일 등의 현안과 관련해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3국이 모든 사안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다. 3국 공조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고 3국은 대화를 통해 공통점을 찾고 있다.

미국은 남북관계의 진전이 미국의 한반도 및 동북아 정책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남북이 냉전시대의 대치상태에서 정상적인 관계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미국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미군주둔을 통한 외교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 남북간의 화해가 진전이 되면 한국은 주한미군의 존재를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으로 보게 될 수도 있다. 만일 이 같은 일이 위협이 된다면 미국은 남북관계의 변화과정에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야 될지도 모른다.

<정리·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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