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모스크바]김기현/15년걸려 지은 美대사관

  • 입력 2000년 5월 15일 19시 48분


모스크바의 노빈스크 거리에 우뚝 들어선 새 미국대사관 건물을 보면 초강대국 미국의 위상이 새삼 느껴진다.

모스크바강이 내려다보이는 명당에 자리잡은 본관과 부속건물들은 모스크바에 근무하는 각국 외교관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중심가를 도는 순환도로 바로 옆이어서 교통도 편리하다. 러시아 정부청사인 벨리돔 건너편에 버티고 서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모스크바의 만성적인 주택과 사무실난으로 몇번이나 이사를 다니며 아직도 대사관이 셋집(?)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위풍당당한 미 대사관이 더욱 부럽다.

미국 정부가 번듯한 건물을 두고 그 옆에 2억6000만달러(약 2860억원)의 거금을 들여 무려 15년만에 새 건물을 완성하기까지는 수많은 사연이 얽혀 있다. 이 때문에 12일 입주식을 가진 제임스 콜린스 미대사의 감회가 특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새 대사관 건물을 짓기로 결정한 것은 냉전시절부터 악명 높았던 미-러의 첩보전 때문. 구관 건물은 러시아 정보기관의 도청장비로 가득했다. 미국측이 정기행사처럼 점검에 나설 때마다 천장 마루 등 건물 곳곳에서 러시아측이 설치한 도청장비가 발견됐다. 대사관 건너편의 정교회 사원은 실상은 미 대사관을 도청하는 기지였다.

견디다 못한 미국은 아예 새 건물을 짓기로 했다. 미국은 건설요원과 건설자재를 미국에서 공수해 도청장비가 들어갈 가능성을 원천 봉쇄했다. 천문학적인 건축비와 기간이 필요했지만 보안을 위해 감수했다.

미 대사관측은 구관을 영사관으로 사용해 러시아인들은 아예 신관에 들어올 수 없게 할 예정이다. 그러나 ‘창과 방패’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 도청문제가 일단락됐다고 할 수는 없다. 러시아가 기상천외한 기술을 개발해 미국의 통신을 엿들을 가능성을 영원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 있는 다른 대사관도 모두 도청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17일 새 건물을 지어 입주하는 영국 대사관도 보안부분에 가장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98년 한-러 외교관스파이 사건 당시 러시아측은 한국대사관 안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알고 있었다. 주러 한국대사관도 러시아측으로부터 부지를 받아 곧 대사관의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미국의 예를 참고삼아 보안문제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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