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종전25돌]'코리아 신드롬' 열풍

  • 입력 2000년 4월 28일 20시 04분


베트남에 ‘코리아 신드롬’이 열병처럼 번지고 있다.

청소년들이 모이는 호치민의 상점이나 음식점에 가면 어김없이 장동건 김남주 등 한국스타들의 대형사진이 걸려 있다. 중고교 학생들 사이에는 한 장에 2000∼3000동(약 200∼300원)하는 한국탤런트 사진 모으기가 유행이며 베트남어로 번안된 한국노래가 인기정상을 달리고 있다.

베트남의 ‘한국 열풍’은 98년 말 한국드라마가 TV에서 본격 방영된 98년 말부터 시작됐다. ‘마지막 승부’ ‘모래시계’ ‘웨딩드레스’ ‘신데렐라’ ‘사랑이 뭐길래’ 등이 인기리에 방영됐다.

이 같은 한국인기는 상품판매로 이어졌다. 한국화장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한국산 액세서리와 의류 등이 거리를 휩쓸고 있다. 베트남에서 운행되고 있는 승합차 트럭 등 대형차의 90% 이상이 한국산이다. 대부분 수입중고차인 이들 차량에는 한글이 그대로 쓰여있을 정도.

베트남 경제전반에 부는 한국바람은 눈에 띄는 것 이상이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을 도와 병력을 파견한 대가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10억달러가 넘는 경제원조를 받아 고속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한국군과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현 베트남 정권은 86년 개혁개방정책 ‘도이모이(쇄신)’을 도입하면서 경제성장 모델로 한국을 선택했다. 그 결과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베트남은 지난 10년 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93년 58%에 달했던 극빈층은 98년 37%로 급감했고 경제성장률은 90년대 중반 연평균 9%대에 이르렀다.

87년 외국인투자유치법을 제정한 이후 지금까지 300억달러가 넘는 외국자본이 들어왔고 이중 한국이 34억달러를 차지한다. 하노이주재 한국대사관측은 29일 “99년 한해만 보면 한국의 대 베트남 투자규모는 약 1억7000만달러로 투자국 가운데 2위였다”고 밝혔다.

양국간 무역규모도 88년 7600만달러에서 98년 15억달러로 10년동안 거의 20배로 늘었다. 99년 총무역액은 17억달러. 한국은 베트남에 14억4000만달러어치를 수출하고 2억6000만달러어치를 수입했다. 한국은 베트남의 4대 무역국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하노이 사무소에 따르면 현재 베트남에는 550여개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다. 호치민시 외곽에서 470명의 베트남인을 고용해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박모씨(42)는 “임금이 싸지만 베트남인들의 노동생산성은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애도 만만찮다. 아시아 경제위기 때 타격을 입은 베트남은 취약한 경제구조로 인해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성장이 98년 5.8%에 이어 지난해는 4.5%까지 줄었다. 베트남 총투자액의 70% 선을 차지하는 외국인 직접투자도 연간 20억달러선에서 99년에는 10억달러 미만으로 줄었다. 외국투자가 줄어드는 이유는 경제위기 이후 다른 경쟁국가들이 환율을 절반 수준으로 낮췄는데도 베트남은 거의 당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다 각종 규제조치의 완화도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 임금과 임대료도 상승추세다.

이 같은 장애요인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경제를 밝게 보는 전망이 많다.

베트남에 무상원조와 기술협력을 제공하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이욱헌 베트남사무소장(43)은 “베트남이 도이모이 정책에 기반해 공업화 현대화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고 국민성이 근면하고 교육열이 높은 만큼 장기 경제전망은 밝다”고 말했다.

▼'비나한 메디코' 현상우사장 "직원들 가족-친구처럼 대해"▼

"우리가 만든 제품을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사용합니다.”

하노이 외곽 노코이 탄찌에 위치한 한국-베트남 의료기기 합작회사 ‘비나한메디코’의 공장 내부에는 이런 표어가 붙어 있다.

이 회사 현상우사장(38)은 28일 “150명의 베트남 직원에게 늘 ‘당신들이 나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고 밝혔다. 열심히 일해주는 직원들에게 감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현사장의 생각.

그의 사업철학은 베트남인을 따뜻한 가족이나 친구로 대하는 것.

“소원수리함을 만들어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바로 조치해주고 있다.”그는 소원수리의 대부분이 화장실이 어둡다거나 추가 근무일정을 일찍 알려주면 좋겠다는 등의 사소한 것들이지만 직원들이 무척 고마워한다고 밝혔다.

직원 생일에는 30달러의 축하금과 꽃다발을 전달하고 여직원이 유산했을 때는 50달러의 위로금까지 전달한다. 최근에는 오토바이가 없는 직원들을 고려해 모든 근로자에게 1년치 월급에 해당하는 1000달러를 무이자로 대출해주기 시작했다. 그의 남다른 ‘직원 사랑’은 베트남 정부에서도 화제가 돼 노동부 직원들이 직접 시찰을 왔을 정도.현사장의 이같은 태도는 생산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97년 한국의 신동방의료와 베트남의 국영기업 아미메디코가 70대 30의 비율로 투자해 만든 이 회사는 하노이에서 모범경영과 현지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한국 중소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월 600만개의 1회용 주사기를 만드는 이 회사는 이미 베트남 내수시장의 70%를 점하는 유수기업으로 떠올랐다. 전체 생산량의 15%는 이웃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 수출하기도 한다. 지난해 매출액은 350만달러였고 순이익이 매출의 10%를 넘었다.

<하노이〓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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