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총재 IMF 어디로?]'쾰러 선장' 앞길 곳곳 암초

  • 입력 2000년 3월 23일 19시 36분


국제통화기금(IMF)은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독일의 호르스트 쾰러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총재를 임기 5년의 새 총재로 선출했다. 급변하는 국제 경제 환경 속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IMF의 사령탑을 맡게 된 쾰러는 미국 등이 추진해온 IMF개혁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IMF는 경제위기 발생시 ‘소방관’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IMF의 개혁은 전세계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개혁을 요구받는 IMF〓쾰러 신임 총재가 마주하고 있는 가장 큰 과제는 IMF의 내부 개혁. IMF는 그동안 한국을 비롯해 금융위기에 빠진 회원국들에게는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하면서도 스스로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IMF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자체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증폭돼 온 것이다.

특히 1997년 시작된 아시아 러시아 남미의 금융 위기와 관련해 IMF 처방의 실효성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자 IMF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182개 회원국들 사이에서 큰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제시 헬름스 위원장이 “IMF는 자금을 지원받는 국가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해악을 훨씬 더 많이 끼친 파괴적인 기구”라면서 “이제는 IMF를 없애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됐다”고 말한 것은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케 하는 단적인 사례다.

▽미국이 제시한 개혁방안〓카네기 멜론 대학의 앨런 멜처 교수가 이끄는 미국 의회 자문위원회는 “IMF는 단기 긴급자금지원을 제외한 모든 자금지원 활동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개발차관과 최빈국의 빈곤 완화를 위한 대출활동도 중단하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권고안을 최근 의회에 냈다.

로렌스 서머스 미 재무장관도 IMF가 장기자금 지원을 축소하고, 개발차관 제공활동은 세계은행 등에 맡겨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 국제경제기구들이 중복되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고 IMF는 금융위기에 빠진 국가에 단기적인 유동성 지원 등 고유의 업무만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IMF내부에서도 이 같은 미국의 의도를 적극 반영하겠다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스탠리 피셔 IMF수석부총재는 22일 “IMF는 미국이 제시하는 개혁 프로그램을 적극 수용할 자세를 갖추고 있으며 쾰러 신임 총재도 이런 개혁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쾰러 총재의 과제〓쾰러 신임총재는 현실적으로 미국이 좌지우지하는 IMF의 주요 결정 과정에 여타 회원국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독일이 당초 카이오 코흐베저 재무차관을 IMF총재로 밀기 위해 총력 외교를 폈다가 미국의 극렬한 반대에 부닥쳐 포기한 것은 IMF가 대주주인 미국의 입김에 따라 ‘갈대’처럼 움직이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IMF총재 자리는 유럽 몫’이라는 원칙론을 내세워 코흐베저를 밀어붙이려던 유럽연합(EU)은 미국이 예상외로 강경하게 나오자 슬그머니 물러서 쾰러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이 때문에 쾰러 총재는 사실상의 승인자인 미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내부 개혁을 추진하더라도 미국의 구상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다. 반대로 그가 ‘친정’인 유럽의 입지와 발언권을 확보하려고 하면 미국과의 갈등이 불가피해진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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