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정계 'KGB인맥' 부활… KGB인물-크렘린, 의회 대거 진출

  • 입력 2000년 3월 13일 19시 25분


숙청(肅淸)이란 미명 아래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했던 구 소련의 비밀경찰, 국가보안위원회(KGB)가 돌아오고 있다.

KGB 15년 근무 경력을 가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대행은 26일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 확실하다. 82년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에 이어 두번째로 KGB출신 러시아 최고지도자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불과 1년 전 무명이었던 푸틴이 최고권력자에 오르는 과정을 보면 비밀경찰 특유의 공작과 음모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지난해 말 보리스 옐친 전대통령의 전격적인 사임, 대행 취임후 벌어진 체첸 침공, 뒤이은 관제언론의 여론 조작 등. 푸틴의 뒤를 따라 상당수 KGB출신 인물이 크렘린과 내각, 의회에 들어왔다.

소련시절 ‘국가 안의 국가’로 군림했던 KGB는 한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91년 소련 붕괴후 시민들은 모스크바 KGB청사 앞의 비밀경찰창설자 제르진스키 동상을 끌어내렸다. 옐친은 KGB를 몇개로 쪼개 힘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98년 외환위기로 개혁과 민주화가 주춤해지자 푸틴을 포함, KGB 출신 세명이 내리 총리를 맡아 ‘KGB 부활’을 예고했다.구 소련에 속했던 라트비아 등 발트 3국은 KGB출신의 공직 진출을 금지했다. 독일도 통일 후 구 동독 비밀경찰의 악행을 철저히 단죄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과거에 대한 청산이 없었다.독재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이들은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푸틴은 “KGB 출신이란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한다. 원내 3당인 조국-모든 러시아당 당수인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총리는 “과거가 어쨌단 말이냐”며 짜증을 낸다. 세르게이 스테파신 전총리 역시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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