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밀보호법 문제점 점검/美-日과 비교]

  • 입력 1999년 10월 17일 20시 53분


법조인들은 94년 제정돼 시행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을 ‘감청제한법’이라기보다 ‘감청허용법’이라고 혹평한다.

이 법이 국민의 사생활이나 기본권 보장에는 아랑곳없이 수사기관의 편의 등을 주로 고려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무엇보다 감청 요건이나 대상범죄가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폭넓고 막연한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현행법의 문제점▼

통신비밀보호법은 감청 요건에 범죄수사 목적외에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수집목적을 두고 있다. 이 경우 허가권자는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나 대통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원내총무가 “국가정보원 8국(과학보안국)에서 국내외 전화를 도청 감청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같이 국가안보관련 정보수집은 국정원에서 주로 담당해왔으며 정보기관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도청 감청에 대한 감시나 견제장치는 사실상 없다는 게 정설이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국가안보관련 정보수집이라는 목적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검찰측은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검찰의 고위관계자는 “일본과 우리는 다르다. 6·25를 체험한 분단국가에서 불가피한 점이 있다”고 반박했다.

이와함께 대상범죄가 체포 협박 사기 공갈 등 감청대상으로 삼기에는 가벼운 범죄들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본▼

일본은 99년 8월 참의원에서 ‘범죄수사를 위한 통신방수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마약 등 4개의 범죄수사에 한해 감청을 허용하고 있다. 이 법에서 감청 기간을 종래의 2일에서 10일로 늘리기는 했지만 우리와 같이 국가안보관련 정보수집 차원의 감청은 허용되지 않으며 감청 남용을 위한 여러가지 견제 감시장치를 두고 있다.

먼저 수사기관의 감청에는 통신사업자 또는 지방공공단체 직원이 반드시 참여하고 감청이 끝난 뒤 감청테이프 원본을 법원이 제출받아 5년간 보관토록 하고 있다.

또 감청후 30일 이내에 감청대상자에게 감청사실을 통지하고 통지를 받은 대상자는 수사기관에 보관된 감청기록을 자유롭게 열람 청취 복사할 수도 있다. 일본은 통신비밀침해죄를 재정신청 대상범죄에 포함시켜 수사기관 등의 도청 감청에 대한 또 하나의 견제장치를 두고 있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이후 74년 ‘전기통신 프라이버시법(반도청법)’이 제정돼 86년 개정됐으나 도청 감청은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개정법에서는 이 법의 적용대상에 △통신수단에 전화외에 팩스 영상 △주체에 정부기관외 개인과 기업체 △감청대상에 컴퓨터속의 정보와 송신중인 정보, E메일 등도 포함시켰다.

특히 미국에서는 영장을 발부하는 판사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 감청의 남용을 견제하고 있다. 영장발부 판사는 수사기관에 감청 진행상황을 수시로 보고할 것을 명령하고 감청종료 90일 이내에 감청대상자에게 감청사실을 통보해줄 수도 있다.

또 수사기관이 청구하는 영장에는 감청 요청자와 참여자의 신분과 위치, 구체적 범죄행위, 감청 대상자의 신분과 위치, 감청 희망기간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토록 하고 있다.

판사는 이런 절차에서 하나라도 문제가 있으면 감청을 허용하지 않고 영장기간을 연장할 때도 그때까지의 감청기록을 제출토록 하는 등 엄격하게 심사한 뒤 허용한다.

판사가 영장발부를 거부한 긴급감청 결과나 통신비밀보호법에 규정된 사항을 하나라도 어긴 감청은 법정에서 증거능력이 철저히 부인된다.

인권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은 최근 보고서에서 정부 통계를 인용, “지난해 법원이 기각한 감청영장은 단 한건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또 “96년의 경우 220만건의 대화가 영장에 따라 감청됐지만 이 중 170만건은 검찰 수사결과 무고한 사람들의 통화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미국인들은 이런 엄격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통신비밀이 철저하게 보호되지 않는다고 믿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

정부에 대한 불신때문에 미국에서는 전화 통화 등에서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일반인들의 암호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최영훈·신석호기자〉c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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