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귄터 그라스]나치즘의 광기 신랄한 풍자

  • 입력 1999년 10월 1일 00시 26분


20세기 마지막 노벨문학상이 독일의 귄터 그라스(72)에게 돌아감으로써 독일은 ‘베를린 천도의 해’를 맞아 72년 하인리히 뵐 이후 27년만에 노벨상을 다시 안는 기쁨을 누리게 됐다.

독일 벨렌도르프의 자택에서 수상소식을 접한 그라스는 “만족스럽고 기쁘며 자부심을 느낀다”고 소감을 말했다.

▼獨문학 새방향 제시▼

그라스는 장편소설 양철북(59년)으로 전세계에서 방대한 독자를 확보한 전후(前後) 독일문학의 거인. 70년대 이후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만년후보’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독일은 올 3월 슈타이들출판사를 중심으로 괴팅겐에서 세계 귄터 그라스 번역자 세미나를 여는 등 그의 노벨상 수상을 범국가적으로 지원해 왔다.

그는 현재 폴란드의 그단스크로 개명된 단치히에서 27년 출생했다. 궁핍하고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뒤 17세에 징집돼 나치의 전차병으로 최일선에 배치됐고 46년까지 2년 동안 포로생활을 경험했다.

석방된 뒤 그는 한때 조각을 배웠지만, 이윽고 패전의 참담한 분위기 속에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회분위기에 분노를 느껴 ‘양철북’ 집필에 착수한다.

초보 문장이론도 갖추지 못한 상태로 착수한 첫 장편 ‘양철북’에서 그는 억압받고 비꼬인 주인공의 시각으로 사회와 역사를 들여다 보았다.

세살 때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의도적으로 난쟁이가 된 주인공 오스카는 기존의 체제에 도전하는 괴물로 비친다.

그라스는 이 작품에서 오스카가 겪는 그로테스크한 상황들을 통해 전체주의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함께 2차대전 후 전쟁 기아 광기 등으로 혼돈을 겪는 세계를 표현했다.

전후 나치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죄책감과 패배의식으로 침체돼 있던 독일문학에 이 작품은 새로운 방향을 예시하는 돌파구로 받아들여졌다.

▼비판적 지식인 명성▼

‘양철북’은 79년 쇨렌도르프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고양이와 쥐’(61년) ‘넙치(77년)’ 등에서 인간의 내면과 치밀한 역사관을 결합시키며 독자들과의 연결끈을 놓지 않았던 그라스는 90년 독일통일 후 동독인들의 사회질서와 정서를 무시한 급속한 통일과정을 비판하며 독일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으로 떠올랐다. ‘동독인들은 정치적 종속을 벗어났지만 돈의 종속이라는 또다른 종속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그의 질타는 ‘구동독에 환상을 가진 공허한 말재주’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공감의 목소리를 불러왔다. 나아가 그는 선거 때마다 헬무트 콜 총리의 낙선운동을 펼치는 등 적극적인 정치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95년 발매된 장편 ‘광야’에서 그는 구동독 출신의 사환을 주인공으로 나치시대 동독시대 통일과정을 차례로 더듬으며 구동독인이 맞은 소외의 국면을 통렬히 꼬집었다.

올해 발표된 그의 최근작 ‘나의 세기(世紀)’는 10월 중 번역돼 출간될 예정이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생애와 작품▼

△27년10월16일〓폴란드 자유시 단치히에서 출생(독일인)

△44∼46년〓2차대전에 독일군으로 참전했다 미군에 의해 전쟁포로가 됨.

△49년〓뒤셀도르프예술대에 입학, 4년간 공부.

△54년〓무용수 안나 슈바르츠와 결혼. 전후 문학동인 ‘47그룹’ 가입

△58년〓‘양철북’의 미완성 초고 강독으로 ‘47그룹 문학상’수상

△59년〓‘양철북’출간. 이 처녀작으로 게오르그 뷔히너, 폰타네, 테오도르 호이스 등 다수의 문학상 수상

△60년〓독일사민당에 입당. 빌리 브란트를 위해 선거운동을 벌이는 등 맹렬한 정치활동

△61년〓‘고양이와 쥐’ 출간

△63년〓‘개들의 시절’ 출간. 이로써 ‘양철북’과 연결되는 ‘단치히 3부작’이 완성됨

△69년〓장편 ‘국부마취’

△76년〓미국 하버드대 명예박사

△77년〓장편 ‘넙치’

△79년〓장편 ‘텔그테에서의 만남’

△86년〓장편 ‘암쥐’

△92년〓‘무당개구리 울음’. 사민당 탈당.

△95년〓장편 ‘광야’

△96년〓토마스만 상 수상

△99년〓장편 ‘나의 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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