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증시 그린스펀 너무 믿는다…투자자들 과잉 신뢰

  • 입력 1999년 8월 26일 19시 55분


말 한마디로 미국 증권시장을 좌지우지하던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FRB가 과열 조짐을 보이는 증시를 진정시키고 인플레 압력을 줄이기 위해 올들어 두 차례나 금리를 인상했으나 주가는 오히려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와 있는 금리와 주가의 상관관계를 정면으로 뒤집는 현상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금리가 상승하면 금융비용 증가로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자금이 주식시장에서 채권시장으로 이탈해 주가가 떨어진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FRB가 24일 연방기금 금리를 연 0.25%포인트 인상한 이후에도 주가는 연일 올랐다. 6월말 금리인상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다우존스 공업평균 주가지수는 금리인상 당일인 24일에 조금 떨어졌을 뿐 25일에 이어 26일에도 올라 사상 최고치인 11,326을 기록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500지수와 첨단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도 24일 이후 3일 연속 올라 최고치 경신을 목전에 두고 있다.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25일 사설을 통해 “역설적이지만 그린스펀 의장이 금융시장 관계자들로부터 지나치게 신뢰받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융시장에서는 FRB가 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 오히려 “그린스펀이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는데 굳이 파티(주식매입)를 중단할 필요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이 신문은 해석했다.

과거에는 “증시가 과열됐다”는 그린스펀의 경고 한마디에도 주가가 떨어져 진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린스펀의 시의적절한 경고와 조치가 100개월째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 경제에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입증되자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안심하고 모든 것을 그린스펀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다.

이 신문은 시장 관계자들이 이처럼 그린스펀을 지나치게 믿으면 믿을수록 심각한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처럼 소폭의 금리인상만으로 증시 과열을 진정시킬 수 없다면 FRB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결국 극약처방뿐이라는 것이다.

이 신문은 “그린스펀의 명성이 오히려 증시 거품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미국 증시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희성기자〉lee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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