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을 넘어서]韓-日 '파트너' 인식 확산

  • 입력 1999년 8월 13일 19시 10분


한국과 일본은 오랜 이웃이지만 그 관계는 대부분 갈등과 긴장의 역사였다. 90년대 후반에 들어 한일관계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아시아의 금융위기를 통해 미국 자본의 힘을 절감하며 두 나라가 힘을 합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자각을 하게된 것이다.

▼일본인이 보는 한국▼

일본인들은 한국을 식민지배한 이래로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한국을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지난해 10월 김대중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정부가 보인 반응은 이같은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일본은 식민지배에 대해 ‘모처럼’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했다. 한국정부는 이를 받아들이고 공동선언을 ‘문서화’했다. 일본정부는 한일관계에 대한 망언이 정부에서는 다시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대(對)팍스아메리카나 파트너로〓일본인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에 누군가와 힘을 합쳐 맞서야 한다고 믿는다. 부담스러운 중국보다 한국을 21세기의 동반자로 삼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도 느낀다.

게이오(慶應)대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한반도정치전공)교수는 “양국은 같은 문화문명권이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무대와 공통의 룰에 바탕해 ‘경쟁적 공존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이미 양국은 공통의 이익이 너무 많아 적대할 수가 없게 돼 버렸다”고 강조했다.

▽동북아 공존의 논리〓한국의 중요성 인식은 무엇보다 경제문제 해결에 대한 일본의 기대를 반영한 것이다.아오야마(靑山)대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한국경제전공)교수는 “세계 각 지역에서 경제협력을 위한 블록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동북아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두 나라가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의 고스게 코이치(小菅幸一)서울지국장은 “지금까지의 양국관계는 사실상 정권간 교류였을 뿐이다. 다양한 NGO 교류, 청소년의 수학여행, 여성의 쇼핑관광 등을 통해 서민적 레벨에서 이웃나라를 접하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국인이 보는 일본▼

한국인들이 일본을 보는 시각에도 ‘조용하지만 의미있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 언론 국민 모두가 일본에 대한 노골적 비판은 피하고 있다. 일본의 대중문화 개방에 대해서도 개방 속도나 범위를 둘러싼 논란은 있지만 개방을 인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공동의 선(善)을 위하여〓물론 한국은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고, 일본인들도 가끔씩 불길처럼 타오르는 한국인의 반일감정에 불안해 하고 있다. 하지만 공동의 선을 위해 나아가자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림대 일본문화연구소의 지명관(池明觀·한림대 일본문화연구소장)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면 더 좋은 문화상품을 만들 수 있고 시장도 크게 넓어진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나 탈아시아적이고 유럽 지향적인 일본인 스스로의 발상으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면서 “그들이 ‘아시아’로 되돌아오도록 전기를 우리가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도쿄, 그리고 더 넓고 깊게〓30대 문화평론가 김지룡씨는 한국에 대한 관심을 억지로 요구하기보다는 양국인 공통의 주제를 중심으로 만나 친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사회적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나 존경받고 주목받는 사람이 사라진 상태다. 따라서 보통사람과 청소년이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과 도쿄만이 아니라 각 지방끼리 서로 만나야 한다.”

소설가 한수산씨는 일본의 폭력 음란 문화의 침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지만, ‘선진화된 일본’‘국제화된 일본’을 보고 우리를 자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일본의 잘못된 특성을 배우자는 것이 아니다. 선진화 국제화했으면서도 가족붕괴 마약 폭력 등 이른바 선진국의 폐해를 최소화한 일본을 본받자는 것이다.”

〈김형찬기자·도쿄〓권순활특파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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