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21세기 실험]유로貨, 기축통화 아직 먼길

  • 입력 1999년 7월 28일 20시 19분


궁극적 통합을 목표로 한 유럽연합(EU)의 실험 가운데 가장 앞서고 있는 분야는 통화 및 경제통합이다. 이미 유럽 11개국(유로랜드) 2억9000만명의 인구를 하나의 통화권으로 묶기 위한 단일통화 유로가 탄생한 지 7개월이 지났다.

유로는 1월4일 국제외환시장에 1유로〓1.18달러로 데뷔했으나 유럽중앙은행(ECB)과 각국 정부의 갈등, 미국의 호황 지속, 코소보 사태 등으로 인해 줄곧 약세를 보였다. 심지어 7월 들어서는 금방이라도 1유로가 1달러선 밑으로 추락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2일 이후 독일경제의 회복전망과 ECB의 금리인상 가능성 시사 등에 힘입어 유로는 힘찬 반등세를 보이고 있으며 26일 한 때 1.07달러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종화(李鍾華)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연구위원은 28일 “유럽경제가 회복국면에 접어들 올해말 이후 유로가 현재보다 더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유로는 아직까지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유로 출범으로 국제자본이 유럽으로 유입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유로의 역할이 기대에 못미치자 실망한 국제자본이 오히려 유럽에서 이탈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채권시장에서는 유로표시 채권발행이 크게 늘어났다. 올 들어 6월말까지 국제채권시장에서 유로 채권은 3975억유로가 발행돼 4002억달러가 발행된 달러표시 채권과 비슷한 실적을 나타냈다.

유로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유로랜드 각국 정부간, 그리고 그들과 ECB의 갈등. 경기가 침체돼 있는 이탈리아의 경우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을 바라고 있는 반면 경기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는 아일랜드와 스페인은 오히려 금리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6월말 유럽통화동맹(EMU)에서 탈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유럽의 통합이 진전돼 EU가 회원국 정부에 대해 최소한 연방정부 정도의 목소리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유로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의견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유로가 달러에 맞설 수 있는 기축통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최소한 4∼5년은 더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유로랜드 각국의 통화가 유로로 교체되는 2002년 7월1일 이후에도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 김득갑(金得甲)수석연구원은 “유로가 명실상부한 기축통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치통합과 함께 금융시장이 발달된 영국의 참여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이희성기자·파리〓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