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상을 보고]유지나/화해의 21세기로

  • 입력 1999년 3월 24일 19시 03분


아카데미 시상식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한 해 결산이자 방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상적 기호이다. 게다가 새 천년을 목전에 두고 치뤄진 올해 아카데미상은 20세기를 결산하는 각별한 의미까지 갖는다. 과거를 결산하는 이벤트나 코너가 너무 많아 4시간 반의 시상식이 지루했다는 미국 언론의 반응도 올해 아카데미가 화려한 스펙터클보다는 한 세기를 결산하는데 각별한 의미를 두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흑인 여배우 우피 골드버그의 사회, 이탈리아가 낳은 천재적 씨네아티스트 로베르토 베니니의 남우주연상과 외국어 영화상 수상, 셰익스피어로부터 영감을 받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제패, 그리고 감독인 엘리아 카잔의 공로상….

언뜻 보면 이변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런 선택은 사실 아카데미가 그동안 누적되어 온 불만과 문제를 해소하려고 노심초사한 흔적을 보여준다. 베니니의 수상은 할리우드 패권주의를 부정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카잔(89)의 공로상 수상이 애초부터 구설수에 올랐으나 끝까지 밀어붙인 것도 20세기 할리우드 최대의 스캔들인 매카시즘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세기말적인 화해의 제스처이다.

이런 선택에서 가장 지지받지 못한 것은 당연히 공로상이다. 동료영화인 반쪽의 냉소와 반쪽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진행된 공로상 시상. 이를 TV로 지켜보는(메카시즘의 내막조차 모를 수도 있는) 일반 대중에게까지 할리우드의 역사인식에 혐의를 두게끔 단초를 제공했다. 카잔은 매카시 선풍이 불던 52년 하원반미행동위원회에서 동료 감독들을 공산주의자로 진술한 인물.

작품상을 포함, 7개 부문에서 수상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 감독상과 기술부문을 휩쓴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할리우드 영화의 강점 혹은 양대 전략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재미, 테크놀로지와 스펙터클이라는 두가지 덕목은 때로는 전자쪽에 때로는 후자쪽에 구두점을 찍으며 할리우드를 전세계로 수출한다. 그리하여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보여준 올해의 성과는 두가지다. 할리우드가 여전히 이야기중심의 영화를 지지하며 오래 전 영국에서 살았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그 원천임을 자랑스럽게 천명한다는 점이다.

할리우드가 셰익스피어와 사랑에 빠졌다는 비아냥(좋은 시나리오 작가가 없다는 비판)이 오히려 자랑스러움으로 입증되는 자리가 올해 아카데미였다.

유지나(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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