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商 「차이나드림」은 없다』…불황에 과당경쟁

  • 입력 1999년 3월 17일 18시 36분


작년에 직장을 잃은 안모씨(40)는 올 1월부터 ‘보따리 무역’에 뛰어들었다.

국산 의류를 사서 중국에 내다팔면 한달 수입이 수백만원은 된다는 소문에 귀가 솔깃해진 그는 남대문시장을 돌아다니며 옷가지를 샀다.

무조건 싼 걸로만 1백50만원어치를 구입, 가방 4개에 담았다.

그러나 막상 톈진(天津)에 내려 마주친 현실은 머릿속에 그리던 ‘차이나 드림’과는 딴판이었다.

현지 상인들은 그가 가져온 물건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런 싸구려 물건은 여기에도 널려 있다”는 핀잔만 들었다.

안씨는 결국 톈진의 도매시장인 ‘따오통’에서 6천위안(약 81만원)에 물건을 처분해야 했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셈을 해보니 기가 찼다. 경비를 포함해 총손해액은 2백만원.

실직자인 그로서는 만만찮은 거액이었다.

실직자가 늘면서 안씨처럼 무작정 보따리무역에 뛰어든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준비 없이 나선 ‘초보 보따리상’들은 십중 팔구 실패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요즘 신흥 보따리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을 상대로 한 보따리무역은 성공확률이 10%를 넘지 못한다는 충고다.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 무역상은 작년에 크게 늘어 현재 2천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렇게 ‘공급’이 늘면서 한국인끼리 과당경쟁을 벌이는 경우도 많아졌다.

톈진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한국인들은 요즘 “보따리상들 때문에 가게문을 닫게 생겼다”고 불만이 대단하다.

한 가게에서 한국 보따리상들이 가격 경쟁을 벌이는 경우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상인들도 이를 이용해 터무니없이 싼 가격을 부르기 일쑤다.

이런 ‘제살깎기식’ 경쟁 탓에 한국산 제품의 가격은 계속 떨어져 작년초만 해도 평균 50%에 이르던 마진율이 지금은 한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원가 이하로 처분하는 일도 흔하다.

보따리무역 전문가 박준모(朴俊模)씨는 “초보자들이 지금 중국시장에 가면 1백명 중 98명이 실패한다”면서 “중국 경기가 호전될 때까지 당분간 중국시장에는 진출하지 않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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