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업계전략」]줄서기 「왕짜증」줄여 매출액 높여라

  • 입력 1998년 10월 26일 19시 43분


《인간은 일생에서 5년 정도를 계산대 놀이기구 신호등 화장실앞에서 ‘기다리며’ 보낸다. 절망감 지루함 무력감 불안감 속에 늦게 온 옆줄 사람들이 먼저 나아가는 것에 대한 ‘우연의 부당함’을 곱씹으며….”(독일의 심리학자 게르하르트 라프)

줄서기. ‘꽉 짜인 나라’ 독일에서도 줄서기는 ‘사회문제’ 수준인가?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테른’ 최근호는 줄서기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업계의 전략을 소개했다. 독일 소매상협회(HDE)의 슈테펜 케른은 “줄 서는 것에 짜증을 내고 발길을 돌린 고객은 아무리 가격을 내리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도 다시 부를 수 없다”고 강조한다.》

▼ 가지치기 ▼

덴마크의 아그너 크라루프 에어랑박사가 1917년 내놓은 줄서기방법. 슈퍼마켓 화장실 공중전화에서 사람들을 무조건 한 줄로 세운다. 그리고 빈칸이 생길 때마다 차례대로 들어가게 하면 ‘머피의 법칙’은 실현되지 않는다. 독일에서 이 이론에 따라 줄을 세우는 업체는 식당 웬디스. 웬디스의 소비자만족도가 맥도널드나 버커킹보다 높은 것은 줄세우기와 관계가 깊다는 분석. 독일의 우체국도 점차 많은 지점이 ‘에어랑줄세우기’로 바꾸는 중. 미국의 은행 등에서도 일반화돼 있지만 국내에서 에어랑줄을 서는 곳은 연세대 학생회관 내 공중전화부스 정도.

▼ 조삼모사 ▼

미국 MIT의 리처드 라슨박사가 버스 승객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버스를 기다릴 때의 체감시간 1분은 달리는 버스에 앉아 있는 2, 3분과 같았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며 기다리느냐에 따라 인내력의 한계가 다르다는 것. 슈테른지는 독일인들이 우표를 살 때는 3분, 영화관 앞에서는 8분까지 기분좋게 참고 기다린다고 소개.

독일철도(DB)는 열차가 연착할 경우 도착에 필요한 시간을 카운트다운하면서 승무원들이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등을 상세히 알려줘 불평을 줄이고 있다. 열차에 카메라를 설치해 달려오고 있는 모습을 중계하는 방안도 검토 중.

미국 휴스턴공항은 승객이 짐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을 8분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불평은 그대로. 공항측은 이에 비행기에서 짐을 찾는 곳까지 걷는 거리를 8분 이상으로 늘렸다. 승객들은 오래 걸어야 했지만 짐이 먼저 도착해 있자 불평률은 0%.

▼ 1초짜리 줄 ▼

고도의 심리전처럼 보이는 줄세우기와 줄서기. 게르하르트 라프박사는 “줄서는 시간을 줄이거나 준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도 좋지만, 기껏 줄에서 벗어난 뒤 또 다른 줄에 서는 게 인생”이라며 “시간이 아깝다고 히스테리를 부릴 게 아니라 심호흡이나 명상을 하라”고 충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심리학자들은 ‘시간의 모순’에 기댈 수 밖에 없다고 설명. 지나고 나면 기분좋고 아름다운 시간은 끝없이 길었던 것으로 느껴지지만 허비한 시간들은 기억조차 하기 힘들다. 기다리는 데 보낸 ‘5년’은 ‘1초 미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는 것이다.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