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패전53년 이중성 여전…앞에선 반성 뒤로는 정당화

  • 입력 1998년 8월 16일 19시 01분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53년을 맞은 15일 일본에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정당화라는 엇갈린 움직임이 나타났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는 일본의 침략전쟁 피해자들에게 ‘반성과 애도’를 표시했지만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전범의 위패가 놓여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에는 각료와 의원, 일반인들의 참배가 줄을 이어 일본의 ‘이중적 역사인식’을 여실히 보여줬다.

또 각종 단체들의 집회가 각지에서 열렸으나 과거사를 정당화하는 우익단체들의 집회가 규모면에서 훨씬 컸다.

오부치총리는 이날 도쿄(東京)에서 열린 정부주최 전몰자추모식에서 “전쟁은 일본은 물론 아시아 이웃나라에도 많은 고통과 슬픔을 안겨줬다”며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깊은 반성과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키히토(明仁)왕은 이날 “전화(戰火)로 쓰러진 사람들에 대해 추도의 뜻을 표하며 세계평화와 일본의 발전을 기원한다”고 말했을 뿐 책임과 반성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오부치내각의 각료 21명의 절반이상인 13명과 여야의원 54명 등 정치인 1백6명은 이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또 신사에서는 전쟁책임을 부정하는 우익단체가 공동주최한 집회가 열렸다.

일본의 ‘보수우경화’도 최근들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최근 유엔 인권소위가 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국가배상과 책임자처벌을 일본에 촉구하자 11일자 사설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강변한 뒤 “보고서는 사실인정에 문제가 있고 균형감각을 상실해 유엔의 권위를 손상시켰다”고 주장했다.

물론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일부 양심적인 목소리도 없지는 않다. 아사히신문은 16일 사설에서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사회일각에 확산된 침략전쟁 부정심리는 ‘국내외의 이웃’의 존재를 무시한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또 전쟁유족 2백여명도 15일 집회에서 “일본은 일본의 전몰자뿐만 아니라 일본이 침략한 아태(亞太)지역 피해자를 위해 ‘침묵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일본과 일본인의 참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역사를 왜곡해 일본인을 부끄럽게 하는 자학(自虐)사관’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는 것이 일본의 현주소다.

〈도쿄〓권순활특파원〉kwon88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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