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그 前주한美대사 대담]『IMF는 실력없는 재단사』

  • 입력 1998년 2월 9일 20시 15분


위기에 빠진 한국. 출범을 눈앞에 둔 새정부는 과연 어떤 전략으로 우리나라를 끌고 나가야 할까. 주한미국대사를 역임했고 현재는 뉴욕의 ‘코리아소사이어티’이사장으로 한국과 미국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도널드그레그전대사가 한국국제교류재단 김정원(金正源)이사장과 만나 새정부의 과제와 한반도 주변의 전망 등에 관해 7일 의견을 나눴다. ▼김〓금융위기로 한국인들은 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한국의 위기해소를 위해 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다. ▼그레그〓한국경제가 점진적이 아닌 혁명적인 방법으로 신속히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번 위기가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김대중(金大中)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한 순간부터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특히 그가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합의내용을 지키겠다고 약속하고 북한에 대해 온화한 어조로 91년 남북한이 체결한 상호교류에 관한 협약을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한 날부터 한국의 이미지는 개선되기 시작했다. ▼김〓한국의 위기 극복을 위한 IMF의 처방을 평가한다면…. ▼그레그〓한국경제의 구조조정과 개혁을 위해 불가피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IMF는 실력없는 재단사라는 생각이다. 마치 옷 한벌을 모든 사람들에게 입히려는 것과 같다. 한국은 IMF가 제공한 옷을 입을 수밖에 없지만 IMF에 “소매가 너무 짧고 어깨가 너무 낀다. 고쳐야 한다”고 말할 권리가 당연히 있다. IMF의 ‘공식’은 정부채무가 많은 나라를 위해 재단된 것이기 때문에 민간분야의 채무가 많은 한국에서는 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취임직후인 3월 김차기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다. 미국의 정가와 재계를 방문할 때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그레그〓양국간에 쌓인 전통적인 신뢰와 성실성을 다시 다져야 할 것이다. 김차기대통령이 국제적인 이슈들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만큼 미 의회 연설을 통해 세계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김〓한국의 금융위기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그레그〓남북한간 대화를 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 내부에서 북한의 붕괴를 촉진하자는 강경론자들의 입지가 좁아졌다. 남한의 경제문제를 알고 있는 북한도 한국을 예전보다 덜 두려워하게 됐으며 자신들을 흡수통일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제 북한이 실제로 대화에 관심이 있다면 남북한간 대화는 가능하다고 본다. ▼김〓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입장과 4자회담의 전망은…. ▼그레그〓지금은 4대 강국 모두 한반도가 동북아의 중심으로서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시기다. 남북한간의 전쟁은 모두에게 큰 재앙이며 이를 방지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다. 한반도를 놓고 전쟁까지 벌였던 모든 국가가 같은 시각을 가졌던 적은 없었다.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더 없이 좋은 분위기다. ▼김〓차기 정부가 현재의 남북한 정전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전환하고 다자간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했는데…. ▼그레그〓평화체제 전환에 동의한다. 과거 김차기대통령이 제안한 6자회담 등 다자간 안보체제 등도 건설적인 방안이다. 다만 남북한간 관계에서는 당사자가 중심역할을 하고 이웃 국가들이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미국은 북한에 건설중인 경수로건설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경제위기로 비용분담협상이 지연되면 북한이 핵동결을 파기할 위험도 있다. ▼그레그〓미 의회는 미국이 북한에 벙커C유를 공급하고 있고 IMF에 1백70억달러를 지원하고 있는데 또 무슨 지원을 하느냐는 반응이다. 미국은 국내의 정치적인 이유로 비용분담가능성에 대해 ‘노’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문제는 장기적으로 여러가지 변화가 있을 수 있다. ▼김〓프랑스의 기 소르망 같은 학자는 한국의 낙후된 이미지가 금융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한국의 국가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레그〓일본은 에드윈 라이샤워나 루스 베네딕트 같은 미국의 석학들에 의해 조명받고 연구되어 널리 알려졌으나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에 취임한 것도 미국에 한미관계를 대변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코리아소사이어티는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대담자=김정원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정리〓구자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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