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일본의 「할복문화」

  • 입력 1998년 1월 30일 19시 54분


▼일본 대장성이 쑥대밭이다. 금융검사부 간부 2명이 은행들에 편의를 봐주고 골프접대와 향응을 받아 구속됐다. 대장상과 사무차관이 사임하고 검찰로부터 참고인 소환을 받은 금융거래관리관 오쓰키 요이치(大月洋一)는 자살했다. 76년 록히드사건 때 전직총리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의 비서 겸 운전사가, 89년 리크루트사건 때 현직총리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의 자금담당비서가 자살한 것과 닮았다. 할복문화의 잔재인가. ▼자살의 동기는 두 갈래로 설명된다. 심리학자들은 개인적 성향을, 사회학자들은 사회 문화적 압박을 강조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기결수의 자살이 허용되고 인도에서 과부의 자살이 칭송된 것은 사회 문화적 압박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의 환향녀(還鄕女)들에게는 가문에서 자살을 권유했다. 이 정도면 사실상의 살인행위다. 할복은 어디에 해당할까. ▼할복은 메이지(明治)유신 때 법으로 금지됐으나 의식은 아직도 흐른다. 자기 잘못으로 ‘윗분’이나 조직에 폐를 끼쳤다는 속죄의식, 자기의 희생이나 함구로 조직과 ‘윗분’을 살려야겠다는 생각, 사회적 평판의 두려움 등이 자살을 유발한다. 이런 자살이 정당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한보사건 기아사태 외환위기를 초래하고도 발뺌하거나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우리 공직자들과는 비교가 된다. ▼일본에서는 정관재(政官財)협조체제가 경제성장을 이룬 ‘황금의 트라이앵글’로 한동안 평가됐다. 그러나 그 유착이 이제는 투명성 및 해외신뢰도의 추락과 고비용 구조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는 공무원윤리법 제정을 지시했다. 재작년 후생성 오직(汚職)사건 때도 거론됐다가 유야무야된 법이다.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남의 일같지 않다. 이낙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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