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투기자본 몰려온다…13일간 9,362억 순매수

  • 입력 1998년 1월 16일 20시 12분


미국의 투자신탁 자금은 물론 주요 투기자본들이 국내증시에 속속 ‘상륙’하고 있다. 외환위기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고금리 주가상승으로 투자여건이 호전된 때문이다. 이들 자금은 투자수익을 목표로 하는 데다 한국경제가 외국자본의 움직임에 따른 영향을 더 많이 받게된 만큼 앞으로 외환 주식시장이 더 불안한 양상을 보일 가능성도 커졌다. ▼투기자본의 빨라진 행보〓지난해 12월초 외국투자자들이 사들인 국내 주식은 하루 2백억원꼴. 그러다가 투자한도가 부쩍 늘어난 12월11일 무려 3천2백51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27일 이후 올들어 16일까지 거래일기준 13일 동안 순매수는 9천3백62억원어치에 이른다. 그중 미국 템플턴펀드는 지난해 12월19일부터 10일까지 사이에 1천3백24억원어치를 순매수해 큰손으로 떠올랐다. 미국 투기자본인 아팔루사는 이 기간에 7백37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또 타이거펀드도 지난해말 현재 국내주식 7백29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소로스도 움직인다〓연초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을 만나고 간 미국 투기자본의 대부 조지 소로스가 움직이는 미국내 최대투기자본인 퀀텀펀드는 본격 투자를 위한 시장탐색에 나섰다. 퀀텀펀드는 지난해말 현재 국내주식을 16억원어치밖에 갖고 있지 않았지만 투자규모를 늘릴 움직임이다. 15일 방한한 퀀텀펀드 투자조사단(단장 아르미니오 프라가 전 브라질중앙은행 부총재)은 임창열(林昌烈)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 이건희(李健熙)삼성그룹회장 등 관계 재계인사들을 면담하거나 업체들을 직접 방문, 투자여건을 점검하고 있다. 프라가단장은 금융계 인사와도 만나 “훌륭한 은행가는 불황기에 은행을 인수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제일 서울은행의 경우 자산의 분할매입도 가능한가. 현재 드러나지 않은 부실에 대해 정부가 지원해주는 방안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등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프라가단장 일행은 정보통신업체 L, S사 및 두개 은행 등을 포함한 몇몇 상장회사들을 직접 방문해 경영지표 등 투자정보를 챙기기도 했다. 퀀텀펀드는 투자결정을 내리게되면 직접 전면에 나서기보다 대리인을 앞세우는 것이 전형적인 투자형태여서 최소한 1∼2주는 지나야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금 성격〓증권감독원은 최근 국내주식을 사들인 외국자본의 대부분이 연금이나 기금이라고 밝혔다. 투기성 단기자본인 핫머니만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한 금융관계자는 “주식매입자금이 투기성이냐 아니냐를 미리 구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 “한국증시에서 ‘혼이 난 적이 있는’ 외국자본은 언제나 민감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외국의 주식투자자금은 언제라도 한국증시에서 대탈출을 감행할 여지가 있다는 것. 15일에도 타이거펀드가 주가지수선물시장에서 1천억원 이상을 매도, 16일 주가하락에 한몫을 했다는 분석. ▼외국자본 진입의 의미〓임 부총리는 16일 “올들어 한국 민간은행들의 외채 만기 상환율이 크게 높아지고 있고 외국인 주식 및 채권 매수가 크게 늘어나는 등 외환 사정이 호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경원 관계자도 “국내 주가하락과 원화가치 하락에 따라 투자비용이 많이 소요되지 않는데다 외환위기 해소 기대 등에 따라 외국인 주식투자가 증가한 것”이라며 “앞으로 국가신용등급이 상향조정될 경우 주식과 채권투자가 급증할 것”으로 분석했다. 경제계 일각에선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금융시장 개방이 미국투기자본의 이해를 반영했음을 보여주는 징표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외국자본에 더욱 민감해진 한국경제〓IMF 지원을 계기로 한국경제는 외국 자본의 직접 영향권에 들게 됐다. 외국자본은 한국이 국가부도 위기를 일단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기본적으로 투자이익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신의 이해에 따라 움직이게 마련. 따라서 현재의 투자자금 규모만을 보고 위기를 넘겼다는 식으로 안심해서는 안된다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로렌스 서머스 미 재무부 부장관이 “한국이 첫 전투에선 승리했지만 전쟁에서 이긴 것은 아니다”라는 코멘트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 〈임규진·이희성·신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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