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떠났던 선조들]작가 김주영의 방문기

입력 1998-01-07 09:12수정 2009-09-26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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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강제이주 열차가 한달 가까운 길고 긴 여정 끝에 중앙아시아 카자흐의 우슈토베에 당도했다. 강제이주당한 한인들이 처음으로 떨어뜨려진 곳이다. 지금은 카자흐의 수도인 알마티에서 자동차로 5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농촌마을이다. 그 기차의 종착지는 우즈베크의 수도 타슈켄트였다. 집행관들은 가축수송열차에 싣고 온 한인 이주민 중 일부를 인가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우슈토베의 황무지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떠났다. 열차에서 내린 이주민들 수백명 중에 단 한사람도 그곳에 연고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삭풍이 불어닥치는 초겨울, 이주민들을 맞이하는 것은 살갗을 엘듯한 추위와 삭풍에 밀려가는 회오리바람 뿐이었다.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열차에 실려오면서 익혀 먹다 남은 몇 됫박의 양식과 깨어진 냄비 뿐이었다. 몇 가족에게 가옥이 분배되긴 했지만 태반의 이주민들은 노숙으로 겨울을 넘겨야 했다. 그들은 맨손으로 토굴을 파기 시작했다. 얼어죽지 않으려면 토굴인들 마다할 수 없었다. 이주 1세대인 우슈토베 주민 이동남씨의 증언에 의하면 강제 이주열차에서보다 더 많은 노약자와 어린이들이 그곳에서 첫 겨울과 여름을 보내면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질과 학질이란 병마가 그들을 덮친 것이다. 필자도 경험하였지만 우슈토베의 황무지는 모기들의 천국이었다. 이주민들의 정착에는 그 지방의 유목민이었던 일부 카자흐족의 도움도 있었다. 이주민 중의 일부 가족은 카자흐족의 이동천막인 파우를 얻어들거나 꾀를 부려 빼앗다시피한 예도 있다고 역시 이주 1세대인 천 미하일씨가 증언한다. 이슬람교도인 유목민들은 그들의 종교적 관습에 따라 돼지를 두려워 했다. 그것을 알아챈 이주민은 유목민들이 양몰이를 위해 파우를 비우고 나간 사이, 돼지를 잡아 그 머리를 지붕 위에다 걸어놓았다. 집으로 돌아오던 카자흐 사람들이 그것을 발견하고 혼비백산하여 도망한 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이듬해 봄, 이주민들은 호미와 맨손으로 황무지에 씨앗을 심고 수로를 파기 시작했다. 그때 파놓은 수로가 지금도 8㎞ 남짓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사람의 키꼴보다 길길이 웃자란 갈대가 수로를 따라 무더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가족이 목숨을 잃으면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토굴 앞에다 묻었다. 고향에서 보았던 초가지붕이나 반달을 본뜬 작은 철판 묘비명에는 한스러운 목숨을 버린 죽은 이의 이름이 한글로 음각되어 있었다. 필자가 우슈토베 마을과 공동묘지로 찾아갔을 때는 지난해 9월 하순 석양 무렵이었다. 역시 갈대만 무성한 이곳이 60년 전에 파놓은 토굴터라고 가르쳐준 이동남씨는 상기된 얼굴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주민들의 서러움과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농토는 초겨울 바람이 휩쓸고 지나는 가이없는 황무지로 되돌아가 있었다. 농사를 지을 만한 근력을 가진 한인의 후예들은 모두 돈벌이를 위해 러시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도회지로 진출하고 없기 때문이다. 〈우슈토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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