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거주 일본인 임영자씨 인생유전, 日열도 울리다

  • 입력 1997년 10월 24일 20시 54분


「핏줄은 일본, 국적은 중국, 언어와 결혼은 한국」. 요즘 일본에서는 2개의 고향방문단이 화제다. 북송 38년만에 처음 고향땅을 밟게 될 일본인 처 1진과 현재 방일중인 45명의 「중국 거주 일본인 고아들」이 그 주인공이다. 특히 2차대전때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와 헤어져 중국에 남겨졌다 늙고 지친 50,60대가 돼 혈육을 찾고 있는 일본인 고아들의 사연은 80년대 한국의 「이산가족 찾기」처럼 일본사회를 울리고 있다. 이들 고아 중에는 자신의 인생역정을 일본어나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말하는 임영자(林英子·59)씨가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하얼빈(哈爾濱)에서 온 그의 삶은 게오르규의 소설 「25시」의 주인공을 연상케 할 만큼 기구하다. 임씨의 본명은 다카모토 에이코(高本英子). 38년 도쿄(東京)에서 일본군 장교의 딸로 태어난 그는 세살 때 부모 및 오빠와 함께 부친의 근무지인 만주로 갔다. 45년 종전 직전 부친이 전선으로 떠나면서 남은 가족이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무단장(牧丹江)역에서 모친 및 오빠와 떨어져 혈혈단신이 됐다. 「고아」가 된 임씨는 일본군의 통역일을 하던 한국인 임순엽씨의 양녀가 됐고 성도 임씨로 바뀌었다. 임순엽씨가 49년 북한으로 돌아가면서 임영자씨는 다시 옌볜의 다른 조선족에게 입양됐고 19세이던 57년 하얼빈의 조선족 박성오씨와 결혼했다. 임씨의 1남2녀 중 두 딸도 모두 한국으로 시집을 갔다. 4년전 큰 딸 결혼때 처음 한국을 찾은 그는 사위가 봉급을 모두 딸에게 맡기는 것을 보고 시집을 잘 보냈다고 생각했다. 임씨는 반일감정이 강한 중국 조선족사회에서 자신의 핏줄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다. 그에게 한국어는 「사실상 모국어」인 반면 「원래 모국어」인 일본어는 낯설기만 하다. 중국어도 알아듣기는 하지만 말은 서툰 편이다. 28일 중국으로 돌아가는 그는 아직까지 혈육을 찾지 못했다. 부모와 오빠가 피란과정에서 이미 숨졌을 가능성도 있고 살아있더라도 미안해서 자신을 모르는 체 할 수도 있다. 임씨는 앞으로 「잊혀진 모국」 일본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고 싶어한다. 고향에 대한 향수도 있지만 일본에서 살면 서울의 딸과 손녀를 만나기 쉽다는 생각 때문이다. 〈도쿄〓윤상삼·권순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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