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수녀 타계/일대기]나환자-고아 돌보며 사랑실천

  • 입력 1997년 9월 6일 20시 32분


6일 오전1시(현지시간 5일 밤9시반).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별이 스러져갔다. 끝없는 사랑과 희생 그리고 봉사로 일관된 삶을 살아온 한 고귀한 영혼이 육체를 떠났다. 「빈민굴의 성녀」 테레사수녀. 인종과 종교, 국가와 이념을 뛰어넘어 모든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로 평생을 살았던 그는 인도 캘커타 빈민굴에 자리잡은 「사랑의 선교회」에서 숨을 거둠으로써 마지막 순간까지 소외된 이들과 함께 했다. 테레사수녀의 본명은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 1910년 알바니아 스코페(현 마케도니아 수도)의 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8세 되던 해 아그네스는 더블린의 마리아 수녀회에 가입, 수녀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후 인도로 파견돼 캘커타의 한 가톨릭계 여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아그네스수녀는 어느날 산간도시인 다질링으로 가는 기차속에서 「부르심 가운데 또 하나의 부르심」을 또렷이 듣는다. 수녀원을 떠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그들을 도우라는 것이었다. 1948년 인도 시민권을 획득한 그는 테레사로 개명하고 가난과 질병이 들끓는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테레사수녀는 먼저 힌두교의 폐사원 한 구석을 얻어 고아 나환자 무의탁노인 등 버림받은 이들을 불러 모아 보살폈다. 온 세계에 사랑과 감동을 전파하는 「사랑의 선교회」는 이렇게 탄생했다. 사랑의 선교회를 시작으로 테레사수녀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안식처 「니르말 히리데이(순수한 마음)」를 연 데 이어 나환자수용소 고아원등을 세워나갔다. 테레사수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필 때마다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난 예수를 보살핀다고 믿었다. 동료수녀들에게도 평소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주님의 손에 네 손을 얹고 그와 함께 걸어가라』 79년 테레사수녀는 소외된 이들을 위한 활동을 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언론으로부터 「일체의 비판과 비방에서 해방된 인물」이라는 찬사가 쏟아졌지만 그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연회를 열지 말고 연회비용을 가난한 자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그는 19만달러의 상금도 모두 나환자수용소건립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교황 바오로 6세가 선물로 기증한 흰색 리무진까지 나환자수용소 건립을 위해 팔아버렸던 테레사수녀의 극단적인 청빈은 일부 교파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96년 11월 심장마비로 입원했을 때 그는 『가난한 사람들처럼 그냥 죽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채 죽어가는 마당에 자신에 대한 간호가 너무 과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3월 테레사수녀는 죽음을 예감한 듯 평생을 바쳐 일궈온 사랑의 선교회를 니르말라수녀에게 넘겨 주었다. 〈강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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