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韓美정상회담 해설]「만남」자체에 의미

  • 입력 1997년 6월 27일 19시 41분


27일 열린 金泳三(김영삼)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정상회담은 내용보다 「만남」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었던 회담이었다. 두 정상간의 회담은 이번이 통산 일곱번째인데다 클린턴 2기 행정부 출범이후 처음.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아칸소주에서 열린 친척(외종조부)장례식에 참석했다가 뉴욕으로 날아와 유엔 환경특별총회 참석,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과의 면담 등 바쁜 일정중 시간을 쪼개 김대통령과 만났다. 특히 유엔 특별총회에 참석했던 각국 정상중 50여개국 정상이 회담을 신청했지만 유일하게 김대통령과 양자(兩者)회담을 가진 것은 한국에 대한 「배려」로 볼 수 있다. 40분간의 회담에서 두 정상은 △북한정세 △북한의 식량난 △대북(對北) 공조 등 주요현안에 대해 호흡일치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필리핀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의기간중 열린 정상회담후 대북 지원문제에 대한 양측의 브리핑내용이 엇갈리는 등 신경전을 벌였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미국은 연락사무소 개설문제 등을 둘러싸고 「한일의 머리위로 급속한 대북접근을 추진한다」는 불만을 샀던 게 사실. 그러나 「연착륙론(軟着陸論)」을 주장해온 국무부의 인식이 올들어 바뀌기 시작한 것이 미정부의 태도를 변하도록 만든 결정적 원인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식량난으로 붕괴될 리 없다」고 판단해온 국무부가 북한의 상황이 심각해지자 한국과의 협의아래 붕괴 대비 시나리오를 마련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이날 회담에서 두 정상이 「빈틈없는 동맹관계」를 거듭 강조한 것도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이같은 상황변화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우리측의 「무리」가 지적되기도 했지만 이번 회담은 미국에 우리가 「극히 중요한」 외교상대임을 확인해 준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정부관계자는 『과거에는 중요 전략문제에 대해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일본―한국―중국의 순으로 브리핑을 해주었으나 이제는 NATO와 한국을 가장 먼저 불러 설명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이동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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