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澤民중국」중대고비… 鄧사망후 집단지도제 지속전망

  • 입력 1997년 2월 20일 20시 01분


【북경〓특별취재반】 중국의 개혁 개방을 주도하면서 지난 78년이후 이 나라를 사실상 통치해온 최고 실력자 鄧小平(등소평)이 19일 밤 9시8분(이하 한국시간 밤 10시8분) 93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했다. 등이 사망함으로써 지난 76년 毛澤東(모택동)이 사망한 후 등의 주도로 추진해온 개혁 개방정책과 시장경제체제의 가속화라는 국정 운영의 기본노선과 등의 후계자인 江澤民(강택민)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핵심 권력구조는 중대한 고비를 맞게됐다. 중국공산당은 등 사망직후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등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개혁 개방 노선은 계속 충실히 수행될 것이라면서도 향후의 권력투쟁을 우려한 듯 『강택민 국가주석을 중심에 두는 것과 함께 당중앙위 주변으로 더욱 성실하게 단결하자』며 국가적 단결을 호소했다.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당중앙군사위원회 등 중국의 4개 대표적 정치기구는 20일 오전 3시50분 당과 군대, 전국인민들에게 보내는 공동서한을 통해 등소평의 사망을 공식발표했다. 등은 당초 입원중이던 북경의 301군병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홍콩의 중국텔레비전네트워크(CTN)는 등이 자택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날 인민해방군에는 최고경계령이 내려졌으며 모든 군인의 자대 복귀명령과 복무지 이탈이 전면 금지됐다. 등소평 사망 직후 강택민주석을 위원장으로 한 모두 4백59명의 전현직 고위 당 정 군간부들로 구성된 장의위원회가 구성됐다. 장의위원회는 20일부터 25일까지 6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그의 장례일까지 천안문광장 신화문 인민대회당 외교부 건물과 모든 해외공관, 신화사 홍콩분사를 비롯한 지국건물에 조기를 게양키로 했다. 장의위원회는 중국의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등의 장례식에 외국인을 일절 초청하지않기로 했다. 한편 등의 사후 중국에서는 급격한 정치적 변화보다는 현체제를 중심으로한 집단지도체제의 정치구조가 당분간 지속되고 美中(미중)관계 및 한반도 정책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이나 강주석이 아직 등소평과 같은 확고한 위상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중국내 지도층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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