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세계를 움직인 사람들/클린턴]美민주당 再選 위업

  • 입력 1996년 12월 23일 21시 00분


「워싱턴〓李載昊특파원」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만큼 조소의 대상이 된 대통령은 없다. 그의 캐리커처는 언제나 정직하지 못하고 수시로 바람을 피우며 원칙이라곤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를 부정적으로 묘사해 베스트셀러가 된 책만 10여권에 이른다. 미국 국민의 60%는 그가 화이트워터 사건과 관련해 뭔가 부도덕한 일을 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재선의 위업을 이뤄냈다. 민주당 출신 현직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한 것은 루스벨트 이후 52년만이다. 알코올중독자였던 의붓 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자란 아칸소의 시골 젊은이가 미국정치사에 또 하나의 신화를 남긴 셈이다. 재선은 역시 지도자로서의 능력에 힘입었다. 경제가 우선 그랬다. 집권 4년 동안 실업률은 5.5%로 떨어졌고 2천9백억달러에 달했던 재정적자는 절반 이하인 1천1백70억달러로 줄었다. 일자리도 1천만개나 새로 생겼다. 중동평화의 기초를 놓고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시킨 그의 외교도 합격점은 넘었다는 평가다. 그는 타고난 정치인이다. 상황 변화에 자신을 최대한 적응시킨다. 9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자 그는 공화당의 정책을 재빨리 차용하는 민첩함을 보였다. 공화당이 주도한 사회복지개혁법안에 기꺼이 서명하고 균형예산의 달성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그의 재선이 상징성을 갖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그는 2000년까지 미국의 모든 학교교실을 인터넷으로 연결하겠다고 공약했다. 핵무기 대신 인터넷을 얘기하는 베이비 부머에게 초강대국 미국의 미래가 다시 맡겨진 것은 전쟁과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지난 반세기가 마침내 마감됐음을 보여준다. 집권 2기에 그가 해야 할 일은 많다. 국제적으로는 지역분쟁의 효과적인 관리가, 국내적으로는 정치자금법 개정 세제개혁 사회복지개혁법보완 등이 당면 과제들이다. 도덕성의 회복은 더욱 절실하다. 『대통령이 한 시대의 표상이라면 우리는 정말 모순 속에 살고 있다. 왜 우리는 우리가 지도자로 선택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가』 시사주간 뉴스위크가 올해의 뉴스메이커로 그를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국민들이 좋아하고 신뢰하는 대통령으로 거듭나는 것, 그것이 그의 최우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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