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허리띠 졸라매기는 누구를 위한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1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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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질서/클라라 E 마테이 지음·임경은 옮김·홍기훈 감수/492쪽·2만8000원·21세기북스

긴축 정책. 경제 불황을 맞닥뜨린 정부가 흔히 꺼내 드는 카드다. 그런데 허리띠를 졸라 결국 ‘잘사는’ 이들이 누구인지 다른 시각으로 따져 보면 이렇다. 재정 부족에 직면한 정부는 공공서비스부터 손댄다. 복지 지출은 줄이고 민영화, 고용 규제 완화에 시동을 건다. 대다수 국민에게는 근검절약을 강조하며 각자도생을 권하지만 역진적 과세를 통해 소수의 투자자가 져야 하는 부담은 덜어준다.

미국 뉴욕의 더뉴스쿨에서 진보경제학을 연구하는 저자가 쓴 책의 내용이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는 오늘날 저자는 자본 질서를 재평가하는 데 천착해 왔다. 저자는 “널리 당연시되는 긴축의 성과를 토론 대상으로 삼아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 위함”이라고 저술 의도를 밝힌다.

책은 긴축 정책이 소득계층의 불평등을 악화했다고 주장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 쟁의가 확산하자 영국, 이탈리아 정부가 지배층의 부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방책으로써 긴축을 펼쳤다는 것이다. 저자는 “개인이 더 열심히 일하되 덜 소비하고, 정부로부터 받고자 하는 기대치를 낮췄다. 이는 민간 부문과 자본주의식 생산에 공적 투자를 집중시켰다”고 한다.

저자 스스로도 “당파적이라 치부되기 쉽다”고 한 긴축의 악영향은 객관적 통계 자료로 입증한다. 총 10개 챕터 가운데 제9장과 10장에서는 영국과 이탈리아의 실질임금 및 노동분배율 추이 등을 통해 긴축의 정치경제적 여파를 보여준다. 1923년 영국의 긴축 정책으로 공공 예산이 삭감되자 육체노동자의 주당 평균 소득은 2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책의 피날레는 ‘제11장’이나 다름없는 총 1255개의 주석이다. 논증이 이뤄지는 대목마다 빼곡히 달린 주석을 따라가다 보면 마천루처럼 번쩍이는 경제사의 뒤편을 들춰보는 듯한 재미가 느껴진다. 불황마다 들려오는 “허리띠 졸라매기”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가져볼 수 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자본질서#경제 불황#긴축 정책#복지 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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