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변이 찾는 ‘암 정밀진단’ 플랫폼 등장… 맞춤형 암 치료 가능해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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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유전체분석과 IT 시스템 접목
빅데이터 기반으로 DNA 변화 파악
발병 원인, 치료, 재발 위험 등 분석

이정석 지놈인사이트 대표(오른쪽)와 박연희 교수(가운데), 오백록 지놈인사이트 CMO. 지놈인사이트 제공
이정석 지놈인사이트 대표(오른쪽)와 박연희 교수(가운데), 오백록 지놈인사이트 CMO. 지놈인사이트 제공
국내에서 해마다 20만 명이 넘는 암 환자가 새로 진단되고, 8만 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있다. 한국인이 평생 암에 걸릴 확률이 36.2%로, 3명 중 1명은 암에 걸리는 셈이다. 같은 폐암이라도 환자마다 발병한 기전이 다르고 최적 치료법도 다르다. 하지만 개개인마다 서로 다른 기전을 찾아 표적 치료를 하고, 재발을 예측하고, 전이를 예방하는 등 맞춤형 정밀 치료에 성공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암세포의 모든 DNA 돌연변이를 검출하고 빠르게 해석하기 위한 암 정밀진단 플랫폼이 완성되어 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놈인사이트가 개발한 전장 유전체분석 서비스 ‘캔서비전(CancerVision)’이 그것. 캔서비전은 전장 유전체분석(이하 WGS·Whole Genome Sequencing)과 IT의 만남으로 일군 쾌거다. 먼저, WGS는 이론상 유전체 30억 염기쌍 모든 곳에 존재하는 모든 돌연변이를 완전하게 식별할 수 있는 기술이다. 연구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던 기술에 체계적인 알고리즘과 대규모 IT 시스템이 접목돼 빠르고 정확한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실제 임상 진료에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한 것이다.

3년간 1만5000건 빅데이터 분석
‘유전체’는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유전적 정보의 총합으로 영어로 게놈(genome)이라고 부른다. 개별 유전 정보인 유전자(gene)가 단어라면 유전체(genome)는 책에 비유할 수 있다. 암 전장 유전체 검사는 한 권의 책 전체를 빠르게 읽어 어떤 오탈자(돌연변이)가 있어서 암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읽어내는 이른바 총유전체 검사다. 총유전체 검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유전적 원인을 포함한 암 발병 원인 규명뿐 아니라 맞춤형 치료 제안과 그 치료 반응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 기술을 응용하면 난치성 희소 질환의 포괄적 진단과 치료 방침 결정 등도 가능해진다.

WGS는 기존의 유전자 분석법인 NGS 기반 패널 검사와 기술 원리는 같지만 암을 일으킨 유전체 설계 도면 전체를 파악한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NGS가 검출할 수 없는 복잡하고 구조적인 변이까지 검출할 수 있어 암세포의 모든 유전체 변화를 식별하기 때문이다. 이는 암의 원인을 규명하고 약물 반응에 대한 유전적 요인까지 밝혀낼 수 있는 근본 자료가 된다. 이른바 맞춤 표적 치료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서울대병원 교수로 지놈인사이트에 합류한 오백록 최고의료책임자(CMO)는 “암 조직의 유전체 프로파일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똑같은 암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환자마다 암의 발생 양상은 모두 다르다”라며 “암은 유전체의 변화 그 자체인데 기존에는 암 유전체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암이 발생하는 장기를 기준으로 분류(폐암, 위암 등)해 치료 방법을 정립하고 약제를 개발했다. 하지만 유전체 분석의 최종 진화형인 전장 유전체분석이 보급되면 환자마다의 특이적 암 발생 돌연변이 프로파일에 근거해 치료약제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놈인사이트는 지난 3년간 국내 주요 병원의 암 전문 임상의들과 함께 임상적인 빅데이터를 구축해왔다. 총 1만5000명의 암 환자를 망라하는 연구를 기반으로 이달 국내 주요 병원과 미국에 캔서비전을 공급할 기술 개발을 마치고 관련 인증 절차를 검토 중이다.

캔서비전은 암 수술 검체에 대한 한 번의 검사로 암 유전체와 관련된 모든 핵심 정보를 확인하기 위한 서비스다. 암 유전체 전체에서 일어난 DNA 변화 양상을 파악하고 암 발생 및 진화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한다. 이들 정보는 면역항암제 및 표적항암제 등 다양한 항암 치료의 효과를 예측하며 암이 전이나 재발한 경우에도 치료제 선택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수술 후 정기적인 혈액 검사로 미세 잔존 질환을 매우 정확하게 감시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8일 미국에서 캔서비전 정식 출시
지놈인사이트가 개발해 8일 출시한 전장유전체 플랫폼 캔서비전 화면.
지놈인사이트가 개발해 8일 출시한 전장유전체 플랫폼 캔서비전 화면.
캔서비전의 압도적인 돌연변이 검출 능력에도 불구하고 비용은 기존 NGS 검사와 같으며 검사에 드는 시간은 1주일 내외로 오히려 빨라졌다. 기존 NGS 검사와 비교해 시간과 비용의 손실이 전혀 없는 셈이다.

이정석 지놈인사이트 대표는 “캔서비전 분석 플랫폼은 암 조직과 정상 조직을 비교해서 암 조직에만 있는 체세포 돌연변이를 추적하는 것”이라며 “폐암처럼 진행 과정에서 유전자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경우에 유전자 일부만을 보는 기존 NGS 검사에서는 최선의 치료제를 찾는 게 힘들 수 있지만 모든 암 유전체의 생체 지표를 읽어내면 돌연변이 하나를 찾을 때마다 치료제를 달리할 수 있어서 최선의 표적 치료 길이 열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편 국내에서 많이 발생하는 주요 암 중에는 발병 나이와 성격이 서구와는 달라서 서구의 치료 지침을 그대로 적용하기에 무리인 경우가 적지 않다. 유방암이 대표적이다. 유방암에 관한 다양한 국제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인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연희 교수는 “유방암이 서양에서는 폐경 여성에서 주로 발생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는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환자의 폐경 여부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서구의 치료 패러다임에서는 폐경 전 유방암 환자에 대한 고려가 잘돼 있지 않다. 우리의 특성에 맞는 연구가 시급하던 차에 WGS가 나온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라고 했다.

현재 박 교수는 WGS 검사를 기반으로 한국 유방암의 특성을 밝히고 이를 치료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놈인사이트는…
2020년 1월 유전체 전문가 주영석(41) 대표와 자가면역질환 전문가 이정석(41) 대표가 의기투합해 창업했다. 두 사람은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의과학 대학원 교수를 겸직하고 있다. 암 및 희귀질환과 같은 유전적 변이로 발생하는 질환을 대상으로 한 전장 유전체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했던 것은 직원의 12%(10명)가 의사 출신 과학자로 국내 암 주요 병원의 임상의들과 협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병원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축적한 전장 유전체 분석 비결과 고도의 IT를 바탕으로 전장 유전체 빅데이터 처리 시스템을 구축한 지놈인사이트는 주 대표는 미국 샌디에이고 본사에서, 이 대표는 서울 본사와 대전을 오가며 연구·개발에 열정을 쏟고 있다.


윤희선 기자 sunny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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