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영화계 ‘단비’…윤단비 감독이 생각하는 ‘남매의 여름밤’ 호평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30일 12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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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4관왕에 이어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밝은 미래상’까지. 윤단비 감독(30)의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그가 한 영화 커뮤니티에 남긴 글처럼 ‘인천에서 로테르담까지 비행기도 타지 않고 제 발로 걸어서 도착’했다. 로테르담이 끝이 아니었다. 개봉한 지 일주일 만인 27일 독립영화 흥행지표인 관객 1만을 넘겼고 해외 7개 영화제에 초청됐다.

메마른 영화계에 ‘단비’가 된 남매의 여름밤은 윤 감독의 첫 장편이다. 가세가 기울어 아버지(양흥주)와 두 남매 옥주(최정운) 동주(박승준)는 할아버지의 2층 양옥에 얹혀살게 되고, 남편과 불화를 겪던 남매의 고모(박현영)까지 이 집에 머물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가족간의 애증을 밀도 있게 그렸다.

영화 속 인물들은 우리와 닮아 있다. 건강이 악화되는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려는 아버지와 고모, 할아버지 집을 팔기로 한 아버지에게 “그래도 우리가 얹혀사는 건데…”라며 원망 섞인 눈물을 글썽이는 옥주. 27일 이 영화를 배급한 서울 강남구 그린나래미디어에서 만난 윤 감독은 “인위적이지 않은, 솔직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제가 옥주 나이(고등학생)일 때 ‘우리 가족만 문제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TV에는 행복한 사례들만 나와 이질감을 느꼈죠. 제 영화에선 가족의 사소한 흠결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관객이 ‘저런 가족도 있지’라며 공감할 수 있도록 말이죠.”

영화를 향한 뜨거운 반응이 아직도 얼떨떨하다는 윤 감독은 호평의 이유로 ‘스크린 너머까지 전달된 내밀한 감정선’을 꼽았다.

“동주와 옥주가 택시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동주가 실제로 잠이 들었어요. 꾸벅꾸벅 졸던 동주를 옥주가 자기 어깨에 기대게 하는데 그걸 모니터로 보면서 마음이 아릿하더라고요. 현장에서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순간이었는데 그 감정을 관객들도 느끼신 것 같아요.”

시나리오에 담겼던 따뜻한 시선이 텍스트 밖으로 나온 데에는 남매의 할아버지 집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윤 감독은 바로 이 2층 양옥에서 시나리오를 집필하며 공간의 디테일을 영화에 반영했다.

“오래된 주택이 많은 인천의 한 골목을 돌아보다가 이 집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어요. 마당의 텃밭, 집안의 오디오, 재봉틀, 유리병에 든 담근 술 같이 손때 묻은 물건들…. 노부부가 50년을 사셨대요. 그분들을 세 번째 찾아뵙고서야 겨우 촬영장소로 섭외하는 데 성공했죠.”

단편영화를 찍을 때는 “속내를 들키는 것 같아 감정 표현에 외피를 둘렀다”는 윤 감독은 남매의 여름밤에서는 “핵심을 말하는 데 집중했다”며 앞으로도 본질에 집중하되 소재는 다양화할 생각이다.

“비슷한 영화는 안 찍으려고 해요. 동어반복이 될 수 있어서요. 아이들이 고난을 극복해나가는 성장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김태리와 이지은(아이유)이 함께 나오는 멜로도 너무 좋을 것 같고요. 하하.”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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