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못 볼수도 있었다?…영화 ‘주디’ 수입에 사활 건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3일 11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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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에게 ‘이 영화는 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건 ‘주디’가 처음이에요.”

외화 수입배급사 ‘퍼스트런’의 이성우 공동대표(47)는 2018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아메리칸 필름 마켓(AFM)에서 영화 ‘주디’를 수입했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월요일이 사라졌다’ ‘러빙 빈센트’ 등 국내에서 흥행한 여러 외화를 수입했지만 할리우드 배우 주디 갈런드의 삶을 다룬 ‘주디’에 유독 사활을 걸었다. AFM은 영화 시사와 판매가 이뤄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 산업 행사다.

21일 만난 이 대표는 “‘주디’ 마켓 시사에 참석한 국내 수입배급사 10여 곳의 대표들을 일일이 만났다. 친한 분에게는 농담 반 진담 반의 협박을, 모르는 분에게는 읍소를 하며 ‘주디’는 우리가 사겠다고 설득했다”고 했다. 마켓 시사는 수입배급사를 대상으로 하는 시사회다.

‘주디’는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년)에서 주연 도로시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오른 갈런드의 굴곡진 삶을 그렸다. 어릴 때부터 가혹한 다이어트, 상습적 수면제 투약에 시달린 그는 약물중독과 이혼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 47세에 요절했다. 러네이 젤위거가 세 아이의 엄마이자 잊혀진 스타의 그늘진 삶을 실감나게 연기해 제92회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주디’는 국내에 소개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통상 외화는 배우, 감독, 제작사 정도만 정해진 상태에서 수입배급사가 시나리오를 보고 구매하는 ‘프리 바이(Pre Buy)’ 방식으로 계약한다. ‘주디’도 영화화되기 전인 2017년 시장에 나왔지만 국내 수입배급사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음악영화라는 장벽 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외화는 90% 이상이 프리 바이 형태로 수입되지만 ‘주디’는 어떤 곡을 쓸지 정해지지 않았고, 젤위거가 곡을 어떻게 소화할지도 미지수라 선뜻 나선 회사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주디’를 눈여겨보던 이 대표는 2018년 AFM에서 영화를 보고 수입을 단번에 결정했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주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 속에서도 관객 8만9800여 명(23일 기준)을 모았다. 이 대표는 “시사 당시 저는 물론 옆 자리 관객들도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그녀의 삶이 감동을 줄 것이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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