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이 펼친 ‘불친절한’ 은유와 사유의 세계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3월 7일 19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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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우상’ 언론시사회에서 배우 한석규, 천우희, 설경구(왼쪽부터)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7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우상’ 언론시사회에서 배우 한석규, 천우희, 설경구(왼쪽부터)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4년 전 영화 ‘한공주’를 통해 관객에 강렬한 울림을 안긴 이수진 감독이 새 영화 ‘우상’으로 돌아왔다.

실화 사건에 바탕을 둔 데뷔작에서 냉담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감독은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인 ‘우상’(제작 리공동체영화사)을 통해 거미줄처럼 엮인 인물들이 품은 욕망과 탐욕 그리고 비뚤어진 신념을 은유적으로 담는다. 그렇게 다시 한번 우리 사회를 비춘다.

“사유가 많은 영화”라는 감독의 설명처럼 ‘우상’은 온갖 메타포로 점철돼 있다. 해석의 여지가 많지만 과연 감독이 설계한 은유와 사유의 세계에 기꺼이 합류하려는 관객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해석욕구를 자극하기보다, 불친절한 쪽에 가깝다.

‘우상’은 우리가 믿는 믿음, 혹은 그 대상이 사실은 편견으로 이뤄진 허상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스릴러 장르로 녹여낸다. 하지만 장르의 묘미도, 메시지도, 명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더욱이 제작진이 개봉 전부터 “스포일러”라고 선을 그은 주요 캐릭터가 내뱉는 사투리 대사의 대부분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탓에 혼란은 가중된다.

● “한국사회 사건·사고의 시작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

‘우상’은 아들이 낸 뺑소니 사고로 정치인생의 위기를 맞은 도의원 구명회(한석규)와 그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 유중식(설경구)을 양쪽에 두고 이야기를 펼친다. 둘은 사고 당일 사라진 중식의 며느리이자 재중동포인 최련화(천우희)를 찾아 나서고, 비슷한 시기 한쪽에선 처참한 살인사건이 연이어 벌어진다.

뺑소니 가해자의 가족인데도 정치인이란 이유로 사람들의 환심을 얻는 구명회, 장애인인 아들의 사고에 의문을 품고 홀로 추적을 시작하지만 어딘지 어수룩해 오히려 의구심을 키우는 유중식, 험난한 삶을 겨우 꾸려가는 최련화를 통해 감독은 믿음의 허상, 신념의 이면을 들춘다.

7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우상’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이수진 감독은 “연출 데뷔를 준비하면서 ‘우상’을 구상했지만 ‘한공주’를 먼저 내놓았다”고 밝혔다. ‘우상’은 그만큼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준비한 작품이란 의미다.

이수진 감독은 “한국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끊임없이 여러 사건 사고가 벌어졌다”며 “그 시작이 뭘까 생각하는 과정이 ‘우상’을 만든 계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화에는 우리 사회 다양한 단면이 담겼다. 도의원 출마를 권유받는 구명회, 불법 체류 상태로 강제 추방 위기인 최련화,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광화문광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날 시사회 뒤 영화를 향한 다양한 평가가 따랐다. 워낙 은유가 많은 탓에 작품의 함의에 대한 궁금증도 이어졌다. 그 가운데 천우희가 연기한 최련화의 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작품의 이해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물론 대사 구사력은 탁월하지만 낯선 언어와 발음인 탓에 관객이 곧바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이수진 감독은 “처음 천우희에게 우리나라에서 사투리를 가장 잘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며 “열심히 연습한 결과 실제로 중국사람 같은 느낌까지 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투리가 어렵기 때문에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아 바꿔야 할지, 자막을 넣어야 할지 고민했지만 그 느낌을 그대로 관객에 전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20일 개봉하는 영화 ‘우상’에서의 한석규.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20일 개봉하는 영화 ‘우상’에서의 한석규.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 한석규, 명불허전 카리스마

‘우상’에서 단연 빛나는 배우는 한석규다. 시나리오를 완성한 감독은 한석규에게 가장 먼저 출연을 제안했고, 한석규 역시 흔쾌히 응했다.

한석규는 자신이 맡은 구명회를 두고 “모든 선택이 비겁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쏟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아들의 뺑소니 사고를 수습하고, 그 위기를 기회삼아 자신의 위치를 견고히 다져 나가는 정치인의 모습은 한석규를 통해 섬뜩하게 완성됐다. 기시감까지 안기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한석규는 “30분이면 될 이야기를 2시간 동안 풀어내는 영화도 있지만 ‘우상’은 런닝타임 143분이 부족한 작품”이라며 “퍼즐 같이 조각난 것들을 하나씩 맞춰야 하는 작품인 만큼 관객도 그 시선에 사로잡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상’은 20일 개봉한다. 때아닌 한국영화 3파전이 예고된 날이기도 하다. 이날 ‘우상’을 비롯해 ‘돈’, ‘악질경찰’ 3편이 나란히 관객을 찾는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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